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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화향백리, 쥐똥나무향기는 백리를 흐르고!

by 솔물새꽃 202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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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왔다가 오월의 길 함께 가는 초롱꽃!
오월에 왔다가 오월의 길 함께 가는 초롱꽃!

화향백리花香百里를 나는 이제 화향만리(花香萬里)라고 개명하고 싶다!

꽃보다 아름다운 자연의 산물이 어디 또 있으랴,

 

오월 봄날 아침, 동네 고샅길 울타리마다 매혹의 꽃향기 넘나 든다,

좁쌀만 한 쥐똥나무꽃에서 풍기는 멋과 향은 참으로 놀랍고 그 향기의 매혹은 오월의 절정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하늘은 청명해서 마냥 마음은 풍선처럼 떠 날고 싶다,

이 하늘 흰구름 하나만으로도 나는 벅찬 감동이요 감사할 따름이다,

숲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과 청신한 바람과 아득한 하늘만큼

우리의 가슴을 듬뿍 가볍게 채워주는 것이 어디 있으랴,

무럭무럭 자라 우거진 오월의 숲과 향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삶은

세상 다른 어떤 추구보다 더 큰 보람이요, 정결이요, 영혼의 안식이리라,

 

저 고혹의 향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 고혹의 향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슴까지 전해오는 사그락사그락 스쳐 가는 오월의 향기와 바람의 감촉

아카시아 향기의 길을 쥐똥나무의 향기가 흐르고 다시 밤꽃 향이 따라 흐르는

화향백리 화향만리의 길...

 

고요한 숲의 그늘을 느리게 천천히 거닐며 새소리에 취하고

고혹의 좁쌀만 한 쥐똥나무 향기에 취하는 아늑한 아침의 햇살

남한산을 넘어온 오월의 바람을 쐬며 하루를 시작하는 숲의 화음

어떻게 다 노래하랴, 자연이 베푸는 해조의 울림을 어디서 이만큼 누려보랴,

 

여기저기서 만난 동산 숲의 오월 야생화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들은 만날 때마다 한사코 차별 없이 소박하게 인정스레 웃어준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나의 5월을 풍성한 축제의 날로 장식해 주었다, 나의 지친 일상을 다독여주었다,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공원 동산은 큰 자연이 아닐 수 없다!

 

밤꽃이 만개하는 날이면 6월의 가슴은 뜨거워질 것이다, 부풀어오를 것이다!
밤꽃이 만개하는 날이면 6월의 가슴은 뜨거워질 것이다, 부풀어오를 것이다!

퇴직 이후 아침을 맘껏 누리는 여유 덕분에 나의 5월의 벗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좋다,

소나무와 상수리나무와 전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숲의 수많은 초목의 숨결 가까이 다가가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외경심을 배운다. 숲의 그늘에서 맑고 싱그러운 노래로 화답하는 가지가지 새들의 음색은 얼마나 찬란한 오월의 초록 물결인가, 가루가루 은초록 햇살인가, 새들의 노래와 바람의 율동과 꽃향기를 따라 함께 노니는 길이 신바람 조화일까,

사람의 길이 과연 자연의 길일까, 마음의 온갖 부유물 사라지는 오월의 향기와 노래!

 

노란 씀바귀꽃, 노란 애기똥풀꽃, 메꽃, 지청개(고마채), 초롱꽃, 산괴불주머니 쥐똥나무꽃, 민들레꽃, 민들레 흰 꽃씨, 노란 돌미나리꽃, 찔레꽃, 이름 모르는 수많은 5월의 주역들이 봄의 주인공이요 나의 평등하고 무등無等한 벗들이다,

5월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5월의 하루하루를 허송할 수 없다, 어찌 5월이 나에게 주는 은택을 금은보화에 견주며 계산하랴, 나는 너무 과분한 축복을 누리며 5월을 산다, 무엇을 더 바라랴,

해마다 그때 그 자리로 나를 부르는 5월의 초목들!

나를 매혹하는 쥐똥나무의 내음, 그 신실한 약속이 기다리는 꽃향기의 그늘!

이 순실한 인연의 맺고 풀림이 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꽃숭어리가 작고 담박할수록 시선이 오래 머문다! 오래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 보인다!
꽃숭어리가 작고 담박할수록 시선이 오래 머문다! 오래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 보인다!

동산 숲은 아카시아 쥐똥나무 향기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밤꽃 향이 다시 밀려오고 있다, 요즘 세상에 아무리 인향人香이 깊고 그윽한들 화향花香만 하랴, 그래서 나는 이제 화향백리花香百里 대신에 화향만리(花香萬里)라고 개명하고 싶다, 화향 만큼 맑고 순실한 것이 없는 까닭이다. 끝없이 끝없이 흐르고 싶은 봄의 길에 꽃의 향기는 여전히 흐르는데, 오월은 저물어 가고 있다.

 

초롱꽃 - 김삼규

 

 

은초롱

꽃초롱 들고

어딜 가실까,

 

오월이랑

신행길 가는

섬초롱꽃

 

꽃초롱

은초롱

앞세우고

가는 듯

다시 오소서

 

오월이랑

손잡고

가자마자

다시 오소서

 

동네 아파트 정원 한 켠에 섬초롱꽃이 다소곳이 홀로 서 있다, 교정의 초롱꽃은 아니지만 정말 반갑다!
동네 아파트 정원 한 켠에 섬초롱꽃이 다소곳이 홀로 서 있다, 교정의 초롱꽃은 아니지만 정말 반갑다!

*강진의 영랑은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노래하였는데, 나는 오월이 가는 것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 가는 것을 다시 섭섭해하련다. 5월을 기다리고 누려온 것을 큰 보람으로 알고 있는 나는 눈시울 흥건히 젖는다.

 

퇴직 전 옛 교정의 섬초롱꽃이 생각난다. 오월의 아침이면 이슬 머금은 채 고개 떨군 수줍은 섬초롱꽃, 밤새 텅 빈 교정을 꽃불 밝혀 지켜준 섬초롱꽃, 오월이 오면 나의 마음이 먼저 가서 기다리는 그 얼굴 그 이름, 섬초롱꽃! 초롱꽃이 몹시 그립다. , 저도 나의 마음 나의 눈빛을 기억하여 오지 않는 나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을까. 섬초롱꽃과 봄마다 5월마다 나눈 정회를 생각하면 그 마음의 지향을 여기 다 풀어 적을 수 없다.

 

20230526,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