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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배꽃이 필 때면

by 솔물새꽃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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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향기 흐르는 마을마다 뉘엿뉘엿 노을이 피어 흐르고 연둣빛 봄도 피어 흐르고... 흐르고 흐르는 봄의 길 배꽃의 향기!
배꽃 향기 흐르는 마을마다 뉘엿뉘엿 노을이 피어 흐르고 연둣빛 봄도 피어 흐르고... 흐르고 흐르는 봄의 길에 배꽃 향기의 그림자!

배꽃이 필 때면

 

유방백세流芳百世, 유방만세流芳萬世라는 말을 다 아시리라.
향기로운 이름은 길이길이 오래오래 흐른다는 말일 것인데,
화향백리花香百里, 인향백리人香萬里라는 말도 슬며시 떠오른다.
 
자연의 길이 사람의 길이요
사람의 길이 자연의 길일 것인데
자연의 마음이나 사람의 마음이나 그 지향이 한결같을 것인데
꽃처럼 물처럼 솔처럼 새처럼
사람의 마음이 자연의 마음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의 향기가 물소리 새소리 꽃향기처럼 
온 누리에 퍼져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의 마음이 자연의 마음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의 마음이 자연의 마음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월, 배꽃이 필 때면 여전히 내 맘을 흐르는 배꽃 향기에 취해
봄의 강을 비틀거리며 건넌다.
 
사방에 봄이 자욱이 흐르는 4월이 오면
심한 차멀미 아지랑이 피어났던 구불구불한 남도 배꽃 길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영산강을 건너고 나주 영산포를 지나 남평 드들강을 건널 때까지
양안으로 이어진 흐드러진 배꽃 길과 복사꽃 길을...
영암 장흥 강진 해남 완도 진도로 가는 구불구불한 신작로,
4월 배꽃이 필 때면
눈에 익은 정든 길을 옛 금성여객 버스에 앉아 여행하는 꿈을 꾼다.
 
(나의 파릇한 청춘의 봄이 피어나 자라났던 길이요,
인생의 소망과 꿈의 씨앗을 뿌렸던 길, 때로는 눈물과 우수와 낭만이 출렁거렸던 길이
바로 그 길이다.)
 

멀고 먼 바다로 아득한 하늘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영산강의 그 마음을 나는 글썽이며 그린다.
멀고 먼 바다로 아득한 하늘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영산강의 그 마음을 나는 글썽이며 그린다!

 
아늑한 황톳길 청보리 유채꽃이 반겼던 차창 밖,
고즈넉한 들녘 논두렁과 다문다문 이어진 촌락들과 인정스러운 야트막한 야산들,
종달새 흰구름 아청 하늘 너머 연두색 솜털 여린 봄이
모락모락 방실방실 봄의 정령처럼 피어났던 남도산하...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이 아름다운 곳을 천지 그 어디서도 나는 찾을 수 없었다.
나의 꿈, 나의 언어, 나의 상념의 묘목은 이 길에서 자라고 굵어졌다.)
 
배꽃이 필 때면 나는 해마다 그린다.
멀고 먼 바다로 아득한 하늘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영산강의 그 마음을
나는 글썽이며 그린다.
 
지금도 4월 봄날이면 영산강 달빛 아래
은은한 배꽃향기 흐르고 있을 남도의 산하를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고 종달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정처 없이 떠도는 낭인浪人이 되어 봄이 흐르는 남녘의 산천을 넘어 건넌다.
 
유방백세流芳百世!
봄의 바람과 봄꽃의 향기에 취하고 싶은 나의 마음,
연하고질煙霞痼疾!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 천석고황, 연하지벽)
내 안에 봄을 기다리며 즐기려는 뜨거운 맹아가 살아서 싹 나고 있는 탓이리라.
 
꽃다운 향기로운 이름으로 만세토록 흐르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어디 또 있으랴만...
어디서 무엇하며 이 봄날을 허송하는가.
 

배꽃이 피고 모란이 피는 마을마다 뉘엿뉘엿 노을도 흐르고 봄날은 쉴 새 없이 흐를 것인데...!
배꽃이 피고 모란이 피는 마을마다 뉘엿뉘엿 노을도 흐르고 봄날은 쉴 새 없이 흐를 것인데...!

 
지금 지나가는  4월은 이 길 끝에 닿으면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여린 새잎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면 무성한 숲이 될 것인데,
봄날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여 여름이 되고 가을로 늙어갈 것인데,
과연 어느 인연의 길이 그 뒤를 이어 흐를까,
 
유방만세, 화향백리, 인향만리를 기리는 청명한 물빛 마음들은
어디서 꽃으로 피어나고 있을까,
 
배꽃이 피고 모란이 피는 마을마다
뉘엿뉘엿 노을도 흐르고 봄날은 쉴 새 없이 흐를 것인데,
무엇에 그리 바빠 봄은 훌쩍 가는 것일까,
머물러 기다려 줄 세월이 어디 있으랴만...
어디에 한눈팔다가 봄이 부르는 소리마저 놓치려는가.
 
배꽃이 필 때면 남도 천 리 배꽃향 흐르는 길 꽃 멀미하며 달리고 싶다.
느림느림 강물처럼 봄을 따라 흐르고 싶다.
쉬엄쉬엄 연분홍 봄의 옷고름을 풀어내고 싶다.
 

쉬엄쉬엄 연분홍 봄의 옷고름을 풀어내고 싶다.
쉬엄쉬엄 연분홍 봄의 옷고름을 풀어내고 싶다!

 
20240419, 오금동 골방에서 솔물새꽃(김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