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긴 병상에서 집으로 돌아온 친구와 통화를 하였다. 위중한 질병으로 입원해 수술받게 되었다는 급작스러운 기별에 하도 황망하여 허탈해하고 있었는데, 병문안도 할 수 없는 외부적 상황이었지만 입원 중인 병실 먼발치에 서서 기도라도 하고 돌아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나의 소행을 뒤늦게 헤아려보며 바보짓을 한 것 같아 무척 마음이 아려왔었는데,
(동병상련, 누군가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공감하는 일은 참으로 큰 사랑의 실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은 잘 모른다. 타인의 슬픔이나 타인의 기쁨도 먼 강 건너 김가 이가의 것쯤으로 아니까...)
희미하게 아주 먼 데서 가물가물 힘없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 허허하고 외로운 마음에 그간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상심과 실의가 컸을까, 얼마나 인생길이 어둡고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같아 황망하고 슬펐을까, 아직 가야 할 먼 길이 더 남아있는데, 인생의 어두운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더 남아있는데, 친구의 아픔과 고뇌와 허무와 상실감을 이제야 헤아리려니 안쓰러운 마음이 하루 내내 빗물처럼 젖어 흐른다.
무슨 큰 위로가 될까 만은 미안한 마음, 쾌유를 비는 마음, 희망의 마음, 격려의 마음, 결단의 마음을 담아 친구에게 ‘위로’의 글을 적어 보낸다.
위로 – 김삼규
새순이 돋아나려는 징조일 것이네,
잿빛 겨울의 잔해 훌훌 털고 일어나는 봄의 통증일 것이네,
항상 바다가 보이는 길로 나아가는 데는 언덕을 넘어야 했어,
먹장구름 속 천둥 번개 뇌성은
가뭄에 단비 알리는 하늘의 축복이 아니었던가,
한바탕 태풍 그치면 맑고 잔잔한 강물 하늘 위로
가을 고추잠자리 훨훨 날 듯 황금 이삭이 곱게 피어나듯
가을마당에 풍년이 온다는 기별이 먼저 와 있었지,
먼 낯선 여행에서 만난 어색한 아침처럼 병상은 얼마나 아찔했을까,
사방에서 밀려오는 창문 너머 두려움 망설임 막막함 허허한 고독한 존재의 아픔들...
단 한 번도 짐작 못 한 상념이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어른거릴 때
(누구나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 난 믿는다)
결국 홀로, 홀로, 길 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얼마나 쓸쓸하고 서러웠을까,
어둑어둑한 미명의 창가에
그대를 기다리는 봄이 오는 길목 잠시 지나가는 꽃샘바람의 시샘이었을 것이네,
봄의 환희 봄의 완성을 위한 지난밤의 진통이 분명해,
이제 그만 모든 짐 다 내려놓고 조금 쉬어가자는,
이젠 숲이나 강가에 앉아 함께 남은 길을 바라보자는 몸의 재롱이었을 것이야,
항상 그대는 바쁘다는 핑계로 몸과 놀아주지 않았지,
몸은 항상 그대의 뜻을 충복처럼 순종하기만 하였지,
묵묵히 참고 기다려 그대의 뜻을 받들어낸 몸의 긴 순종...
몸이 그대에게 갈망하는 눈물의 투정이었을 것이야,
알았어, 알았다, 내가 미안해, 몸아, 몸아, 내가 정말 미안해,
그동안 내가 너와 놀아주지 못했어, 너를 돌보지 못했어, 널 소홀히 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나를 용서해줘, 정말 미안해, 이제 너와 자주 놀아줄게,
너의 뜻을 받들어줄게, 너랑 길을 함께 갈게, 너에게도 이젠 쉴 틈을 줄게,
날 믿어줘, 그동안 내가 어리석었어, 너의 노고를 몰랐어, 너를 돌보지 않았어,
내가 정말 어리석었어, 정말 미안해, 나를 용서해 줘,
이렇게 달래 보게!! 이렇게, 이렇게 몸을 다독여보게!
몸은 곧 그만 화를 풀 것이야, 몸은 모든 불평 다 버리고 그대를 용서할 것이야,
비로소 그대와 몸은, 몸과 그대는 마른땅에 단비처럼 흡족한 하나가 될 것이야,
곧 다시 그대는 봄을 맞이할 것이야, 곧 다시 봄을 살게 될 것이야,
다시 봄을 살아보자고, 몸이 그대를 이끌 것이야,
곧 새봄이 온다는, 새봄을 누려보자는 몸의 약속일 것이야,
그대랑 봄을 함께 누리고 싶은 몸의 절규였을 것이야,
그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남아있는 것을 몸은 다 알아,
인생의 어두운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더 남아있는 것을 몸은 다 알고 있어,
아직도 몸은 그대를 사랑하고, 아직도 몸은 그대를 사랑하니까,
그대의 길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몸은 다 아니까,
몸을 두고 그대 혼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이제, 남은 길은 그대가 먼저 몸의 뜻을 더 들어줘봐,
이제, 그대보다 몸을 더 아껴야 하는 것을 알았으니까,
20230425,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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