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초롱꽃과 에델바이스를 설악 신선대 영봉 기슭 어디서 나는 보았다! 신선대 영봉에 오르는 기슭 어디서 나는 설악의 에델바이스를 보았다. 이 감동은 지금도 나를 황홀경에 젖게 한다. 늘 내 안에 피어 있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에델바이스!
설악동에서 금강굴을 거쳐 오르기 시작한 이른 새벽 공룡능선 등반은 짙은 안개와 간헐적으로 쏟아붓는 국지성 소나기 탓에 일망무애의 조망을 포기한 험한 고행이었다. 그리할지라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비 온 덕(?)을 톡톡이 누린다. 산에서는 비가 온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비 올 때가 아니면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자연의 비경을 비가 와서 누릴 수 있으니, 비가 올 때면 산에서는 변화무상한 기상 탓에 언듯언듯 선녀처럼 날아오르는 해무와 안개, 구름바다 위로 떠오른 앙증맞은 조막섬을 즐길 수 있다. 언뜻언뜻 보여주는 아청빛 하늘은 비가 오지 않으면 도저히 볼 수 없는 비경이다. 궂은날만이 볼 수 있는 설악의 진풍경을 맘껏 누리며 마등령 삼거리를 나서 오르락내리락 끝이 없는 공룡능선을 건넌다. 민달팽이를 만난 곳도 이곳 능선을 넘을 때다. 늘 전신으로 산을 즐기는 나의 산행! 보고 듣고 읽고 쓰고 생각하는 길. (내가 쉴 때면 어김없이 카톡에 옮겨 적을 것이 뭔가가 생긴 것이다. 이때가 나에게는 거의 유일한 쉴 참이다.)
공룡능선은 길이 없다. 그러나 공룡능선은 길이 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기암절애가 그대로 길이요 멀리서 보면 하늘에 닿은 고산영봉이 그대로 길이다. 긴 공룡의 등골뼈를 닮은 설악의 능선을 넘어온 것이다. 공룡능선은 다 넘어 어느 등성이에 올라 뒤돌아보아야 보이는 능선이다. 힘들게 지나온 긴 인생의 고난의 길처럼 보인다.
신선대에 올라앉아 뒤돌아볼 때 더 아름다운 기암절애의 길. 지나고 보면 정말 아름다운 길... 그런데, 웬일가! 힘든 산행으로 기진맥진하여 목을 축이려는데 금은보화를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비 갠 후의 티끌 한 점 없는 청명한 아청鴉靑의 하늘이 펼쳐지지 않는가!
하마터면 또 울뻔하였다. 일망무애一望無涯, 조망 좋은 신선대를 조심스럽게 올라보니 지나온 길들이 바다에 뜬 섬이다. 초록의 바다 위에 하얀 구름바다. 비가 오는 날만이 누리는 기막힌 2중, 3중의 바다를 본 것이다. 푸른 초록 숲의 바다와 흰구름 물안개의 바다와 하늘바다까지... 바람에 몰려가는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영봉은 동화 속 작은 무인도이다. 지나온 공룡능선을 넋을 잃고 돌아볼 즈음, 하늘에서 별이 내려와 꽃이 된 에델바이스가 나에게 온 것이다!
설악에서는 에델바이스가 이미 멸종되었다고 학계 생태학자들 사이에 선언하였다는데, 그런데 이 에델바이스가 나에게 온 것이다. 그 순간 얼마나 놀랐겠는가. 설악에서 거의 아무도 보지 못한 꽃인데, 하늘에서 내린 에델바이스가 나에게 온 것이다. 애띤 얼굴 물빛 맑은 눈을 뜬 채 날 맞아준 것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선선봉 기슭 아주 옴팡 들어간 양지 녘, 아무리 둘러봐도 아늑한 보금자리 그곳에만 두어 송이가 외롭게 외로운 눈빛 말똥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좀처럼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으슥진 곳, 보금자리에 안긴 아기 천사처럼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축복 축복... 그날 하늘의 축복으로... 지금도 잘 사는 지 모른다. 그 덕분에 설악을 다달이 오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산에서 이 꽃들과의 만남은 오래도록 늘 마음에 남는다. 대청봉 기슭 금강초롱꽃과의 만남도 잊을 수 없는 인연이다. 다섯 송이 금강초롱꽃! 대청봉 인근에서 만난 금강초롱꽃은 키도 작지만 꽃숭어리가 무척 애처롭고 얼굴빛이 청아淸雅하다. 대청봉 거의 정상에서 만난 금강초롱꽃, 차라리 만나지를 말 것을... 만나자마자 작별이다. 여름 지나고 가을이 오면 이내 곧 시들어 사라지고 말 것이니... 얼마나 안타까운 만남인지 모른다. 거의 다시 볼 수 없는 오랜 작별이 되고 마니까...
(솔물새꽃의 설악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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