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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겨울 자작나무에 내리는 비!

by 솔물새꽃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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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는 자작나무에게 '그렇게 그렇게 서서 이 겨울을 버텨야 한다고...' 동네 오금동산에서...
겨울비는 자작나무에게 '그렇게 그렇게 서서 이 겨울을 버텨야 한다고...' 동네 오금동산에서...

자작나무는 겨울비 내릴지라도 피어날 봄의 완성을 위해, 부활의 봄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 겨울은 긴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이다!

 

겨울비 - 김삼규

 

 

긴 침묵의 숲은 밤의 밀물 도도한데

 

낮달이 홀로 서성이다 길 떠나버린 어스름

달빛도 차가운 두려운 골목길을

숨 가쁘게 허기를 달랜 초원의 이 빠진 야수처럼

이제 밤의 별자리를 찾아보아야 할 긴 시간

뜨거운 초록의 피붙이들 떠나버린 나목의 빈 숲처럼

간혹 바람의 시선이 머무는 창가 빗소리

메마른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동면에 든 동산의 길을 겨우 돌아온 짧은 하루 먼 나의 여행

허공을 떠도는 겨울 그림자 수심의 강을 이루어 흐른다

희미한 달무리에 안긴 별빛처럼

살아있음은 작은 꽃망울 속 반짝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차갑게 차갑게 사흘 내내 겨울비가 내린다

 

적막이 가득한 골방에 깃든 아늑함처럼

우두커니 홀로 서성이는 우수의 리듬 대지의 목마름이 온다

어디에도 머물 곳 없는 가루가루 가루비 내리는 소리

무수한 기억의 감촉들 잿빛 속 불씨의 온기가 따라 내린다

 

피어날 봄의 완성을 위해

피어날 새의 부활을 위해

서둘러 결빙의 절정을 향해 오른 고산준령의 설해목

그렇게 그렇게 서서 이 겨울을 버텨야 한다고

누구나 그렇게 순종하며 길 떠나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지나온 길 위로 겨울비 흐른다

 

너무 아쉽게 끝나버린 한 생애의 강

바람이 지나간 자국마다 시린 감촉은 깊어 가는데

군살처럼 봉곳이 안으로 아물어 가는 가냘픈 편린들이

겨울비 내린다, 흩어진 백발의 눈물 날린다

진눈깨비들의 재롱을 겨우 헤쳐가는 변방의 초목들이

여전히 창가를 배회하는 우상의 미혹을 잠재우며

겨울 안개비 날린다

 

길은 어느 때고 멈출 수 없는 가파른 에움길

돌아서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기억의 벼랑길

비에 젖은 길, 바람의 옷고름 젖어드는 우주의 미성(微聲)

숨결이 피어나는 대지의 가슴 위로

차디찬 예감이 내리고 있다

 

봄의 꽃자리가 도톰하니 부풀어 오른 것이다. 한 겨울인 줄 알았는 데 겨울의 길이 봄의 길과 함께 동행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겨울 속에 봄이 흐른다는 말이 옛 얘기만은 아니구나, 수긍하며 이 '겨울비' 적어본다.

 

보슬비 같기도 하고 가랑비 같기도 하는 겨울비가 연 3일째 내리고 있다. 잿빛 겨울 하늘은 우수와 연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가루가루 흩날리는 겨울비를 가루비로 명명하고 나니 겨울 하늘에서 하얀 쌀가루 같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참, 이름은 묘한가 보다. 보슬비는 흔한 말이어서 보류하고 지금 내리는 이 겨울비를 명명할 적절한 말은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가루비'를 지어낸 것이다. 겨울 가루비가 가루가루 내린다고 생각하니 훌훌 털어버려도 젖지 않았고 머리니 어깨니 운동화니 어디든 가루가루 싸락눈처럼 쌓일 성싶었다.

 

해거름 운동삼아 동산을 걸어본다. 우산이 없어도 좋다.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이 닿는 대로 오금동산을 오르니 솔잎마다 가루가루 가루비가 쌓인 솔가지들, 갈참나무 굵은 가지는 벌써 새 잎 날 자리가 봉곳이 부풀어 오른 것이 눈에 역력하다. 키 작은 철쭉의 가지 끝도 봄 꽃자리가 선명하다. 봄의 꽃자리가 도톰하니 부풀어 오른 것이다. 한 겨울인 줄 알았는 데 겨울의 길이 봄의 길과 함께 동행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겨울 속에 봄이 흐른다는 말이 옛 얘기만은 아니구나, 수긍하며 이 '겨울비' 적어보았다. 

 

한 겨울인 줄 알았는 데, 겨울의 길이 봄의 길과 함께 동행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한 겨울인 줄 알았는 데, 겨울의 길이 봄의 길과 함께 동행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솔물새꽃의  오금동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