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의 천예天倪, 평등平等 무등無等 동등同等의 영봉을, 산에서 산을 보다! 감탄과 감동이 휘감아오는 원융의 화해 사랑 용서 겸손이 창공까지 가득한 길.
설악 천불동을 지나 무너미 삼거리에서 좌로 희운각 대피소 앞을 경유하여(우측 길을 따라 오르면 신선대와 공룡능선과 마등령 삼거리와 금강굴로 이어진다.) 소청 중청 대청으로 오르는 길목 어디쯤에서 동해와 고성 앞바다와, 오르락내리락 인생길 같은 공룡능선의 웅비하는 기암절애를 뒤돌아 굽어보았다네, 이 아름다운 무위자연의 천예를, 살아있는 우주의 무늬를, 자연의 숨결을 내가 어디서 다시 만나랴, 뜬금없이 경건과 거룩과 정결과 성스러움의 반열에 다다라볼 수 있는 이 엄숙한 자리, 이 호사스럽고 과분한 축복의 자리,
감탄과 감동이 휘감아오는 원융의 화해 사랑 용서 겸손이 창공까지 가득한 길. 생애의 길에 맛보는 무아지경이니 도취니 황홀이니 신명이니 하는 순간의 희열을 어찌 거저 누릴 수 있으랴.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다 그러하거늘, 인생은 누리는 자의 것이거늘, 그 무엇 하나 탓할 게 없는 아주 무등(無等)하고 평등(平等)하고 동등同等한 대동(大同)의 세상이 우리가 한바탕 살다 가는 이 땅 이 목숨이다, 문제는 생각이다, 관점이다, 태도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가서 생각할 수 있다면 바라보는 안목이요, 해석이요, 선택이다.
산은 한사코 나의 가슴의 포부를 키워준다네, 규모와 함량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풀려 떡하니 나의 가슴에 안겨준다네, 큰 항아리를 큰 빈 항아리를 품고 사라고 한다네, 쩨쩨하고 소심하고 사소하고 오불고불한 소인배의 닫힌 앎, 배타적 성정, 우물 안 완고한 아집을 단호하게 버리고 대인의 풍모로, 산의 가슴으로, 열린 앎으로, 북해 바다의 가슴으로, 여유작작餘裕綽綽 살아보라고 나를 다독인다네,
하찮고 조밀한 일에 매이지 말고 드높고 드넓게 태연자약(泰然自若)한 산의 포부를 가져보라고 나를 설득한다네, 민달팽이 걸음 마냥 미음완보(微吟緩步)하며 가는 길을 쉬엄쉬엄 즐기라고 하데,
두 번 없는 생애, 두 번 다시 갈 수 없는 길인데, 무엇 때문에 무겁게 짐 잔뜩 메고 가려하느냐고 타이른다네, 산꼭대기에 올라 정상 표비석 안고 인증샷 남기는 게 산행의 뜻이라면 산을 오르지 말라고 은근히 나무라네, 행복은 결코 길 끝에 있지 않다고 하데, 그 어디든 꿈과 보람이 있는 어디로 향해 가는 길이 그 길 위의 시간 속에 행복이 있다고 산은 항상 나의 가슴에 각인되도록 주문하데, 길을 즐기라고, 과정을 누리라고 말하데,
산은 바쁜 사람은 받아주지 않거든, 오직 명예나 권력이나 부를 탐하는 사람은 산이 거부하거든, 산은 육체의 운동을 위해 관계의 친교를 위해 여흥을 위해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찾는 사람들한테는 결코 그 마음을 열어 보여주지 않데, 산은 건성으로 스치듯 찾는 자들에게는 산의 저류를 흐르는 산의 뜻을 결코 말해주지 않네, 산은 탐욕과 소유욕과 이기적인 탐심으로 베풀 줄 모르고 채울 줄만 아는 가진 것 많은 비대한 사람, 주체할 수 없이 몸짓이 뚱뚱한 사람은 산은 본체만체하거든, 산의 시선은 우리의 속마음까지 감찰하는 통찰의 눈을 가졌거든, 산은 마음 열린 큰 대인의 풍모와 지략을 지녀서 인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산은 염결(廉潔)한 청정심 고고(孤高)한 절개 지조, 청렴하고 소박한 천진스러운 어린아이 같은 물빛 성정을 품은 사람을 좋아하거든, 산의 길 자연의 길이 한결같이 고상하고 순결한 까닭이라네...
(솔물새꽃의 ‘설악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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