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여 어서 오라, 봄은 온 우주의 홍역이다!
다시 못 올 봄날의 통증이여, 어서 오라! 봄이다, 봄은 봄이다, 누이의 볼에 핀 붉은 반점을 보듯 슬퍼하자, 봄을 기다리자, 온전히 봄이 되어 봄을 누리자,
긴 겨울을 이겨낸 온 누리의 초목들, 어느 것 하나 산고(産苦)의 몸살을 치르지 않은 것이 있으랴, 봄비를 맞으며 새로이 움트는 생명을 보면 자연의 숭고한 인고(忍苦)의 시간이 느껴진다. 그래서 봄은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봄은 온통 감동이고 전율이다. 나의 심부에서도 봄은 꽃으로 피어나고 감탄과 격정의 환호 속에서 들불처럼 번져가기 시작한다. 온 대지에 피어나는 봄의 정령, 나뭇가지에 흐르는 파릇한 생명의 기운, 어느 것 하나 경건한 찬탄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감을 통해 봄을 감촉하고 있노라면,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란 작은 생명으로 준동하는 봄의 흐름에 전율하고 호흡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와 기쁨과 눈물을 억누를 길이 없다. 이 봄날, 오묘한 재주를 부리는 조물주의 조화를 보라, 꽃 피고 움이 나는 산천초목을 안전에 불러들여보라, 봄비 오는 날, 새로이 단장한 봄의 천사들을 살짝이 다가가 만나보라, 은빛 봄비를 맞으며 정갈한 차림으로 봄을 마중 나가는 만상(萬象)의 영웅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라는 존재는 저절로 자연 앞에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놀라운 자연의 흐름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봄은 인간에게 마음의 겸손과 비움을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봄은 우리 인간에게 해탈과 견성의 깨달음에 가까운 창조의 시간을 허여(許與)한다.
봄을 맘껏 느끼고 싶다. 온 누리에 준동하는 생명의 환희 속에 나도 하나 되고 싶다. 온전히 봄을 누리며 나도 봄이 되고 싶다. 저 초목처럼, 저 대지 위의 봄의 정령처럼, 나의 몸과 마음에도 봄의 생기가 꿈틀 하는 것을 온몸 온 맘으로 감촉하고 싶다. 내 안에도 봄이 와서 오장육부에 새 기운이 흐르고, 나의 마음도 해묵은 겨울의 잔해와 낡은 관념의 모든 진애를 다 털어내어, 완전히 새로운 봄의 생기로 새로이 다시 채우고 싶어 진다. 내 안에도 봄이 와 있음을 확실하게 느끼고 싶은 것이다. 내 안에서도 온갖 초목의 꽃이 피고, 새순이 나고, 봄바람과 새들이 날고, 봄의 새소리 봄의 물소리 가득한 숲이 되어 함께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싶다. 나의 내면이 온통 봄의 언어와 봄의 얼굴과 봄의 기운으로 탈바꿈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서 누군가 내 안의 봄을 느끼고 봄이 왔음을 알 때까지.
봉곳이 부풀어 오른 꽃 필 꽃자리를... 거뜬히 겨울을 이겨낸 봄을 향한 뜨거운 인내와 기다림을 공감해 보아라, 전신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온 맘으로 봄을 보여주는 들풀의 발돋움과 강한 생명의 힘을, 앙상하게 마른 겨울나무 가지에 떨리는 봄의 미성(微聲)을 엿들어 보아라,
가느다란 실핏줄처럼 여리디 여린 쥐똥나무 가지의 새 움,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가지들을 보라, 봉곳이 부풀어 오른 꽃 필 꽃자리를... 거뜬히 겨울을 이겨낸 봄을 향한 뜨거운 인내와 기다림을 공감해 보아라, 전신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온 맘으로 봄을 보여주는 들풀의 발돋움과 강한 생명의 힘을, 앙상하게 마른 겨울나무 가지에 떨리는 봄의 미성(微聲)을 엿들어 보아라. 봄비에 정갈히 몸을 씻고 햇살에 실눈 비비며 깨어나는 산수유꽃을, 파르스름하게 담록의 연한 미소로 연붉은 수줍음으로 온 누리에 번져가는 진달래꽃의 봄을, 잔잔하게 파문을 그리며 밀려오는 목련꽃의 화음을 상상해 보아라, 어느 것 하나 황홀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 어느 것 하나 신묘한 경탄과 감탄과 감동 아닌 것이 있으랴, 새로이 싹을 밀어 올리는 대지의 힘, 드디어 내 안에도 뜨거운 봄의 기운이 열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한다.
유년 시절 골방에 갇혀 앓았던 홍역처럼 아프게 피어난 붉은 매화와 산수유의 난만한 꽃망울, 산수유 진달래 매화 개나리꽃의 뒤를 따라 목련은 피어나고, 살구꽃 복사꽃 꽃봉오리가 사방에서 연달아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봄의 조화와 섭리, 사방 꽃가지에 유두(乳頭) 모양으로 태동하는 봄의 예감이 온 감각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때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미세먼지와 황사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장 가 양지 녘은 민들레 제비꽃 등 온갖 방초(芳草)들로 발 들여놓을 틈이 없다. 물아일체(物我一體), 봄은 내가 되고 나는 봄이 되어가는 봄과 나 나와 봄의 조화, 만화방창(萬化方暢) 사방으로 번지는 봄의 환희, 나는 때를 잊고 세속의 관심에서 벗어나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해탈을 경험한다. 때를 잊고 상춘(賞春)의 기쁨에 넋을 잃고 망아지경(忘我之境)의 고요한 직관의 바다에 침몰하고 만다.
오는 길로 다시 돌아갈 궁리만 하고 오는 봄날이여, 기다리고 기다렸던 봄은 단 하루도 차분히 머물러 있지 않고 오는 그 길로 다시 가고 말더이다. 꽃 피는 소리에 잠시 웃다가, 이내 곧 꽃 떨어지는 소리에 다시 울고 마는 무정한 봄의 길, 긴 기다림 끝에 맛보는 덧없는 봄날의 사랑이여, 봄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날리는 봄비, 그 봄비 내리는 길에 떨어지는 동백꽃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마음에 슬픔만 한 움큼 뿌려놓고 가는 봄비 오는 소리의 예리성曳履聲을, 저 남도 백련사 만덕산 동백꽃 그림자 밟으며 사라져 가는 봄의 서러운 옷자락을, 잠시 웃다가 영영히 울고 가는 봄의 길을, 꽃 그림자 지는 길로 무심히 가고 마는 봄의 슬픈 뒷모습을,
봄은 온 우주의 홍역(紅疫)이다. 대지 위 살아 꿈틀거리는 진통의 표상이다. 천둥 뇌성 벼락 우리의 전신을 관통한 봄의 기운, 다시 못 올 고운 봄날의 통증이여, 어서 오라! 진부한 가슴속 두터운 오욕汚辱 다 걷어내고 청춘의 열병을 앓는 누이의 볼에 핀 붉은 반점, 선홍의 꽃잎을 보듯 봄을 서러워하자, 봄과 함께 웃다 울다 아파하자!
(20230223,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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