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무위자연, 꽃들은 제 모습 그대로 피어있어 아름답습니다. 뱁새는 황새를 부러워하지 않고, 황새는 뱁새를 우습게 여기 지도 않고 뱁새 앞에서 우쭐하지도 않습니다. 자연의 천성대로 온전히 누리며 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분꽃은 분꽃대로 채송화는 채송화대로 모두 아기자기 모여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채송화는 키 큰 분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분꽃은 채송화 앞에서 우쭐하지도 않습니다. 맨드라미는 봉숭아를 시새움하지 않고 들국화는 우아한 달리아보다 못났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각기 타고난 천성대로 자신만의 빛깔로 곱게 피어 초가을 햇살 아래 바람과 일광을 즐기고 있습니다. 꽃은 제 모습 그대로 절로 피어서 천생 꽃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타고난 성정 그대로 풀이면 풀이고 나팔꽃이면 나팔꽃으로 피고 지고 한 철을 살 뿐입니다.
정원의 주먹만 한 감은 가을 햇살의 세례를 받아 점점 주홍빛으로 탐스럽게 익어 가고, 사과는 사과대로 반짝이며 나뭇가지가 휘어 땅에 닿도록 가을의 풍성한 결실을 이뤄갑니다. 감은 사과를 부러워하지 않고 사과는 배를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똑같은 사과나무끼리 내 가지에는 열 개가 열렸는데 옆의 나무는 스무 개나 더 많이 열렸다고 시기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모과는 또 모과대로, 대추는 대추대로 모두들 제 각각 천성대로 탐스러운 가을로 여물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못생겼다고, 가진 것이 많지 않다고, 키가 작다고, 몸집이 크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가방끈이 짧다고, 명문대가 아니라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열등감에 젖거나 자신을 불평하는 것은 지구 위 모든 생물 가운데 오직 사람뿐인 것 같습니다.
대붕大鵬은 대붕으로 천공天空을 날아다니고 기러기는 기러기의 날갯짓으로 강물 위를 납니다. 기러기가 대붕처럼 오래 멀리 날지 못한다고 낙담하지 않습니다. 까치는 제 몸짓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촐랑대듯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리할지라도 뱁새는 황새를 부러워하지 않고 황새는 뱁새를 우습게 여기 지도 않습니다. 뱁새 앞에 우쭐하지도 않습니다. 기러기를 부러워하는 까치가 없고 까치를 부러워하는 참새도 없습니다. 참새는 참새로서 살아온 제 삶의 천성이 있고, 까치는 까치들끼리 사람들이 사는 동네 인근 공원이나 가로수 사이를 날아다니며 서로 사랑하고 번식을 하며 주어진 자연의 천성대로 온전히 누리며 한 생을 마감합니다.
바로 이것이 장자가 말한 자연입니다. 무위의 세계입니다. 노자가 말한 도와 덕의 세계요, 하늘의 질서입니다. 자연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와 노자에게 있어서 자연과 도와 덕과 하늘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타고 난 본래 제 모습대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자연입니다. 상선약수의 경지입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그리하여 물이 흐르듯이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며 제 모습 그대로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분꽃이 소박하고 수수한 제 모습을 아름답다고 스스로 여기지 않고, 오직 장미꽃처럼 되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지도 않습니다. 분꽃이 장미가 되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사과는 어떤 경우도 고운 자기의 빛깔을 매혹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렌지 빛깔처럼 산뜻하지 못하다고 조마조마해하지도 않습니다. 더 매혹적인 오렌지 빛깔처럼 되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오직 사람뿐입니다. 아름다움에 등급을 매기고 잘 생긴 연예인을 닮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도 사람뿐이고, 어떤 판에 박힌 특정한 아름다움을 시새움하거나 다른 사람의 닮은꼴이 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단순하게 천성대로 살아가는 여유를 잃어버린 채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늘 마음에 짐을 지고 근심과 걱정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물며 돈이 많은 사람도 지위나 명성이 높은 사람도 제 자신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대하여 당당하지 못하고 자칫 잘못 생각하여 자신의 빛나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생물은 이 지상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처럼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지나친 소유욕에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키며,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만족할 줄 모른 채 오직 돈만 계산하고 아파트만 꿈꾸며, 늘 가난하게 가난하게만 살면서 자신 없어하는 미물은 사람 외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너그러운 마음으로 정원의 꽃들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거울 앞의 순결한 자신을 만나보세요. 이 세상 그 어떤 꽃도 모두 제 모습 그대로 피어 있어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대는 이 세상 유일무이한 별이요 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뿐인 최고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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