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일과 조화의 산, 나는 산이 되고 산은 내가 되는 산의 길 - 무등無等의 산에 안겨 내 안에 빼곡한 세상 티끌 씻어내자!
평등의 산, 동등의 산, 대동大同의 산에서 허기진 영혼을 충전하자! 산이여, 이 세상 오롯이 솟은 산이여, 이 세상을 구원하여라.
산이여, 이 세상 사람의 길이 산의 길로 이어지게 하여라, 산의 길로 자연의 길로 이 세상을 인도하여라, 아니다, 차라리 견인하여라, ‘여기’서 ‘저기’로 날아오르는 자를 위하여, 부활의 새 생명을 위하여, 초월의 길로 나아가는 자만이 누리는, 상승의 길을 열망하는 자만이 누리는 자유와 해탈을 위하여, 산이여, 산이여, 이 세상 잠든 자들의 영혼을 깨워라. 눈을 열어 드넓은 드높은 산의 가슴을 산의 큰 뜻을 보게 하라, 이 세상 맘몬의 혼돈 속을 방황하며 스러져가는 영혼의 이름을 불러다오, 한 길로 오직 앞서가는 무리를 뒤쫓는 맹목의 영혼을 위해, 오직 한쪽으로 우하니 몰려가는 눈먼 자들의 아우성을 잠잠하게 하여라,
산에 올라, 산등성이에 올라앉아 굽어보며 산 아래 흐르는 도도한 푸른 초록의 능선을 수많은 계곡과 봉우리를 헤아려보아라, - 산의 정결 염결 청결, 산의 위의와 위용, 산의 큰 뜻 큰 포부 큰 함량, 산의 무한한 인정 자비, 산의 한이 없는 용서 너그러움 관용, 산의 침묵 묵언 암시, 끝이 없는 잠언의 울림, 말하지 않고도 보여주는 산의 인자 도덕, 산을 보면 산 위에 앉아 얼마쯤 산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가슴까지 밀려오는 산의 감동이 물결쳐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산의 공평한 베풂, 산의 열린 마음, 차별하지 않고 높고 낮음이 없는, 크고 작음이 없는, 미추美醜의 구별이 없는, 선악의 경계가 없는, 산의 평등(平等)한 성정을 다 읽어보아라, 무등(無等)한 산의 섭리도 읽히리라, 산의 이 마음을 다함이 없고 변함이 없는 사랑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러나, 그러나, 이 현란한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세워 올린 롯데타워 꼭대기에 떠밀려 올라와 세상 아래를 굽어보아라.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첨탑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좁쌀만 한 티끌의 세상이다. 키 큰 사람도 키 작은 사람도, 많은 것을 가진 자도 가난한 자도, 고급 외제 차도 값싼 국산 차도, 월세 사는 사람도 타워펠리스 사는 사람도, 반지하 단칸방도 고급빌라 고대광실도, 모두가 한결같이 한 점에 불과하다. 아주 작은 점의 흔적들이, 바둑알만 한 점과 또 다른 한 점들이 흩어졌거나 헝클어져 연결된 점의 세계일 뿐이다. 인공의 회색 바다다. 우리의 감성과 감탄과 미의식과 신성한 영감을 자극하는 경건하고 거룩하고 엄숙한 영혼의 잔잔한 파동을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사막의 고원일뿐이다.. 인공의 사막.
산과 사뭇 다른 세상 마천루에 오르면 과연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자연의 길을 외면한 사람이 사는 세상은 회색의 바다일 뿐이다.
회색의 바다 위로 흐르는 어두운 상념 물거품 아픔, 허무하고 덧없는 탄식, 순결한 영혼을 억압하는 맘몬의 경쟁심, 시지프스의 반복하는 형극의 채찍, 서로 다른 욕망이 부딪칠 때마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맥놀이의 강이 흐를 뿐이다. – 높고 낮은 크고 작은 불평등과, 넘을 수 없는 굴곡진 차별의 철책과 담장, 지배와 탐욕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끝없는 욕망의 바벨탑, 지향 없는 방황 끝에 오는 어두운 침몰, 눈먼 자들과 청맹과니들이 쏟아져 나와 흐르는 충돌과 꿈틀거림, 번잡한 인파와 차량이 흐르는 탁류의 강, 휘황한 야광이 사라진 뒤에 오는 허탈감과 공허한 탄식, 안식의 밤을 빼앗긴 불야성의 술 취한 불빛들, 비틀거리며 빙빙 도는 사람들, 아비규환의 부르짖음이 번득이는 성공과 실패의 날카로운 심판, 불나방의 도취와 탄식이 부르는 광란의 찬가 – 아파트와 돈과 권력과 전쟁과 경쟁의 동굴 속 영원을 망각한 환영의 강이 넘치고 넘쳐날 뿐이다.
산의 품에 안겨 산을 지긋이 보고 있으면 산은 온데간데없고 내 안에 산이 보인다. 내 안의 태산이 보인다. 내 안을 독차지한 채 버티고 있는 태산준령의 크고 작은 산이 보인다. 내 안을 빼곡이 차지하고 있는 완고한 산 완악한 산 교만한 산 거짓의 산 위선의 산 가식의 산 죄악의 산 불의의 산 나태의 산 안일의 산이 다 보인다. 이 수많은 내 안의 봉우리와 숲들이 훤히 다 보인다. 이 봉우리를 하나하나 정복하는 일, 이 산을 하나하나 점령하여 가루가루 티끌을 만들고 내 안을 고른 평지로 만드는 일이 나에게는 산의 길인지도 모른다. 설악이나 지리산을 오를 때, 천불동계곡이나 한신계곡을 지날 때 나를 괴롭혀 온 이 불의의 봉우리들을 짓뭉개 날려버리는 일, 내가 산에 가는 큰 까닭이다. 내가 산을 가는 것은 내 안의 산을 정복하는 길이다. 내 안의 산을 점령하고 내 안의 나를 구속하는 허욕의 산더미를 산산이 가루가루 흩날려버리고 나면 내 안이 평평한 평원으로 잔잔한 호수처럼 맑아옴을 느낀다.
이제 가끔 산에 안겨보는 아늑한 쉼이 필요하다. 자연의 길과 사람의 길이 멀어질 때 오는 극렬한 탁류의 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사람의 길에서 한쪽으로 휩쓸려 다니느라 균형을 잃어버린 지친 영혼에게 안식을 베풀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의 길이나 사람의 길은 한 가지이다.. 자연의 길을 가야 한다. 자연의 길에서 잃어버린 자아의 순결을 회복하는 쉼을 누릴 때가 필요하다. 산의 품에 노닐면서 산의 가슴이 타이르는 깨달음을 듣고 배우고, 허기진 영혼을 충전하며 소진한 육체에 새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산을 바라보는 시간, 산을 만나 산을 읽고 산을 이해하는 시간이 절대 필요한 위기의 시대를 우리는 건너고 있다.
그러기에 산은 지친 영혼이 정결을 회복하는 영적인 성소요, 오욕의 자아를 버리고 순결한 어린아이로 거듭나는 부활의 산실이며, 자연의 길과 사람의 길을 깨달아가는 신성한 도량道場이다.
그러므로 산은 세상 속에 만연한 인습 탐욕 경쟁 이기심 시기심 돈 명예 권력 불의의 쇠사슬에 꽁꽁 묶인 자들에게는 결코 산문을 열지 않는다. 산은 결코 세상 오욕에 찌든 자에게는 산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들의 눈에는 도저히 산이 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귀에는 산의 소리가 결코 들릴 수 없다. 이들의 가슴에는 산의 고매한 정신이 스며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무서운 맘몬과 권력의 우상이 이들의 영혼을 꽁꽁 결박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젠 세상에서 훌훌 벗어나 산을 가자. 산으로 향한 마음을 소유하자. 무엇이 진정한 부자인가를 스스로 물어보자. 참으로 진지하게 질문해 보자. 대한민국은 사방이 산이다. 내가 어느 날 북한산에서 만난 북유럽에서 온 젊은 청년은, 한국이 가장 부럽다고 하였다. 언제 어디서고 걸어서 산을 오를 수 있는 땅을 자기네 나라에서는 천국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서울은 바로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인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 천국 가까운 곳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이 어찌 가장 부럽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을 들었다.
정말 그렇다. 대한민국은 천혜의 은총을 받은 땅이 틀림없다. 사시사철 금수강산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더 말하여 무엇하랴. 유한한 인생 헛반데 한눈팔지 말고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려 유유자적, 안분지족한 멋진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진정한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꼭 산을 오르는 일만이 천국을 누리는 것은 아니리라. 산을 오르는 마음과 그 지향을 통해 내 영혼의 순결을 회복하는 것이다. 산을 거닐면서 산을 명상하면서 산의 소리를 들으면서 산의 숨결을 느끼면서 내 안 가득 차지하고 있는 세속의 온갖 진애塵埃(탐욕, 물욕, 소유욕, 정욕, 돈, 아파트, 권력, 명예, 이기심, 시기, 조롱, 냉소, 교만, 거짓)를 씻어 날려버리는 것이다.
사는 동안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내 안에 있는 독거미(타란툴라)를 죽이는 일이 행복의 좁은 문으로 지향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제 산에 가는 것을 산의 정상을 올라갔다 오는 하루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산의 정상을 오르려 하지 말자. 쏜살처럼 올라가 산꼭대기에서 정상 정복을 기념하여 인증샷 남기는 것이 결코 산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등산登山’을 ‘산을 오르다’로 읽는, 산 앞에서 함부로 저질러 온 오만과 무례함과 자연의 길을 배반한 인간의 유아독존, 독선은 이제 서둘러 조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산은 오르는 곳이 결코 아니다. 산은 산꼭대기를 향해 숨차게 직선적 사고로 달려가는 곳이 아니다. 산은 민달팽이 걸음으로 구불구불 느리게 거니는 곳이다. 산은 그 길을 즐기는 곳이다.
미음완보(微吟緩步), 쉬엄쉬엄 산길을 음미하며 물과 새와 꽃과 금강송과 바위와 폭포와 그윽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노니는 곳이다. 물의 노래 새의 노래 솔의 노래 따라 부르며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만나 산이 베풀어주는 무한한 도덕과 우주의 섭리와 생명의 진실을 공감하며 내 안에 산을 들이는 일이다.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는 합일과 조화를 이뤄내는 길이 산의 길이다. 이제 우리는 산의 길을 가야 하리라.
우리를 안아주는 산의 포근한 감촉과 산의 편안한 숨결을 산문에 아주 경건하게 들어서 본 자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산을 읽고 이해하고 산과 친밀해지려면 산과 자주 만나야 한다. 산이 없는 곳에서도 산을 마음으로 그려보는 시간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산을 오르려고만 하지 말고 산을 즐겨야 하는 마음의 여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산과 어울려 노니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무턱대고 아무 준비도 없이 산을 시간을 보내는 곳이나 운동하는 곳, 바람을 쐬는 곳, 친구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곳 정도로 대하는 경망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어디서든 마음의 눈으로 먼저 산을 바라봐야 한다. 이런 감관이 열리는 느낌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면 산 앞에 선뜻 나서기를 망설여보아야 함이 마땅하리라. 산문에 들어가 산의 울림 산의 숨결 산의 소리를 듣는 여유를 먼저 맛보아야 한다. 산을 숨차게 오르려 하지 말자. 산을 좋아하는 사람, 산을 즐기는 사람, 산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젠 산을 산으로 만나야 하리라. 내가 먼저 ‘나’를 비우고 산과 온전히 하나가 될 마음이 되어야 한다. 나를 비워야 산을 내 안에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영혼의 샹그릴라, 천불동을 건널 때 보았네! (0) | 2023.02.26 |
---|---|
대청봉에 오르면 보인다, 길은 하늘에 닿아 있음이! (2) | 2023.02.24 |
설악 공룡능선을 꼬물꼬물 건넌다! (0) | 2023.02.19 |
산사람은 산을 오르지 않고 산을 관조한다! (0) | 2023.02.18 |
물아일체, 나는 산이 되고 산은 내가 되고! (0) | 2023.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