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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대청봉에 오르면 보인다, 길은 하늘에 닿아 있음이!

by 솔물새꽃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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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길은 하늘에 닿아 있음을 대청봉에 오르면 보인다. 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 일이다
마침내 길은 하늘에 닿아 있음을 대청봉에 오르면 보인다. 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 일이다!

설악 대청봉에 오르면 보인다. 마침내 길은 하늘에 닿아 있음을 본다. 이 지상의 모든 길은 하늘로 향해 있음을 안다. 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 일이다. 뒤돌아볼 때 침묵의 긴 겨울 길이 보인다. 아청鴉靑의 하늘을 향한 외경심이 절로 일어난다. 

심연의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겨울산은 여느 산과 사뭇 다르다. 다른 계절의 산이 활력의 산이라면 겨울산은 성스러운 순례자의 텅 빈 묵상이다. 겨울산의 산문을 함부로 넘보아서는 아니 된 줄 알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숨도 거칠게 쉬지 못하고 살짝이 혼자 다녀온 적이 있다. 정말 겨울 산의 숨결 겨울산의 소리, 잠든 겨울산의 얼굴 그 속 가슴을  한번 꼭 보고 싶었다.

 

빼곡하게 풍성하게 빈틈이라고는 없었던 산의 가슴은 다 말라버린 엄마의 젖가슴 같았다. 이 세상 하직하기 보름전 하염없이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며 마지막으로 씻어드렸던 아부지의 등골처럼 허망하기 그지없는 앙상한 근골만 서 있었다. 몸에 두른 것 다 벗어버리고 먼 길 향해 떠나는 순례자의 가볍고 단순한 뒷모습처럼. 바람도 물소리도 새소리도  다 떠나보낸 텅 빈 산의 고요, 적멸의 안식, 긴 부동의 죽음, 겨울산을 적멸보궁이라고 한번 말해도 좋을까.

 

비로소 산의 숨은 얼굴이 희미하게 그려진다. 산의 또 다른 길도 보일 듯하다. 무엇 하나 감출 것 없는 밋밋한 겨울산의 투명한 형상! 아, 산의 겨울 모습은 저렇구나! 인생을 함부로 속단할 수 없는 것처럼 산의 성정을 산의 천태만상을 함부로 건성으로 소리쳐 주장할 일이 결코 아니짐만, 다시 겨울 산 앞에서 숙연해진다, 겸비해진다. 산 앞에서 낮아지고 낮아질 일만 우리에게는 밀린 숙제처럼 쌓여만 가는 것 같다. 

 

대청봉에 오르면 보인다. 마침내 길은 하늘에 닿아 있음을 본다.
대청봉에 오르면 보인다. 마침내 길은 하늘에 닿아 있음을 본다.

설악 비선대에서 겨울을 뒤돌아볼 때 텅 빈 침묵의 겨울 길이 보인다. 뒤돌아보는 길이 더 잘 보인다, 그러므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는 일은 남은 길을 더 잘 가기 위함이다.

지나온 길을 아는 일은 가야할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우리의 남은 길이 비록 짧을지라도 그 길을 잘 갈 수 있으면 다행 아니겠는가. 산의 길에서 사람의 을  배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산의 길을 틈만 나면  자주 가는  까닭이다.

 

 

뒤돌아보는 길이 더 잘 보인다

지나온 길은 뒤돌아 보아야 더 잘 보인다

 

숨을 고르고 물 한 모금 앉아 마실 때

비선대에서 뒤돌아볼 때

무너미삼거리에서 뒤돌아볼 때

굽이치는 공룡능선의 준령이, 깊디 깊은 천불동계곡의 만학천봉이

지나온 그 지난한 길이 드디어 보인다

숨차게 넘어올 때 보지 못했던 길이 능선의 기암절애가 계곡의 심연이

뒤돌아볼 때 더 잘 보인다

 

가끔 앞만 보고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볼 일이다

 

천불동을 훨훨 날아오르는 물안개의 옷자락에서

물에 젖은 물소리가 더 잘 들리듯이

길 다 지나가고 물 다 흘러가고 바람 다 잦아지고 난 결빙의 시간을 걸어보아야

벌써 지나가버린 날들이 걸어온 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소리가 들리고 바람소리 새소리도 아스라이 들려온다

 

지나온 길이 얼마나 가파랐는지 보인다

지나온 길이 얼마나 길고 험준했는지도 보인다

뒤돌아보며 읽는 길

뒤돌아보며 보는 길

 

가끔 서둘러 앞만 보고 왔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볼 일이다

 

뒤돌아볼 때라야 길은 하늘에 닿아 있어

계절은 다 가고 꽁꽁 닫힌 겨울 산문 앞에 서 있을 때라야

산이 보이고 길이 보이고 함부로 함부로 큰 소리 지르며 지나온 길들이 보인다

오욕의 등골을 타고 내리는 소태맛의 회한은 밀려오는데

산은 텅 비어있는데 내 안에 가득한 허세 오만 미움 자랑 탐욕이

내 영혼의 좀처럼 갉아먹는 줄도 모른 채

밤이면 혼자 밤을 새워 열병처럼 신음하였다

내 길의 질곡의 함정들이 다 보일 때까지

 

뒤돌아볼 때면 더 잘 보이는 내 영혼의 샹그릴라가 달처럼 떠오른다

낮은 데서 쳐다보아야 더 거룩해 보이는 산의 염결

겨울이 되어서야 하늘에 닿은 숲의 길이 보이듯이

봄 여름 가을 다 지나가고 홀로 겨울 산문에 서면 밀려오는 회한의 한숨들 속에서

드러나는 지나온 나의 길

지나간 길의 흔적들이 더 잘 보이는 것은 텅 빈 숲 탓일까

이제야 늦은 겨울 숲에서 마침내 산을 본다 더 가야 할 길을 본다

뒤돌아보면 벌써 고개를 넘고 있는 해거름 짧은 하루의 긴 그림자 

산은 무엇일까, 난해한 긴 질문이 어둠처럼 엄습한다

모든 길은 칠흑의 밤바다에 잠기고 서둘러 하늘엔 별의 길이 보인다

 

산은 겨울이라야 더 잘 보인다. 하늘로 향한 물의 길... 비룡폭포를 지나 토왕성 폭포의 결빙의 늠연한 자태를 보다
산은 겨울이라야 더 잘 보인다. 하늘로 향한 물의 길... 비룡폭포를 지나 토왕성 폭포의 결빙의 늠연한 자태를 보다

 

(솔물새꽃의 설악동일기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듯이 아청 하늘을 보듯이!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