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을 오르지 않는다. 설악의 공룡능선 드넓은 초록바다를 민달팽이처럼 꼬물꼬물 건넌다. 낮아지고 낮아지는 길을 가기 위해, 나는 산을 찾는다. 나는 산문 앞에 서서 늘 산이 나에게 문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나는 산을 오르지 않는다. 설악의 공룡능선 드넓은 초록바다를 민달팽이처럼 꼬물꼬물 건넌다. 낮아지고 낮아지는 길을 가기 위해 나는 산을 걷는다. 산문 앞에 서서 늘 산이 나에게 문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산문山門에 들어가 산을 보고 산을 읽고 산을 듣고 산의 내음까지 나의 가슴 깊은 곳으로 들이려 한다. 산에 안겨 산의 숨결 산의 소리를 호흡하려 한다. 그러므로 나는 산을 오르지 않는다.
내가 산을 찾아 산길을 걷는 것은 공룡능선의 초록바다를 넘는 민달팽이처럼 꼬물꼬물 미음완보하며 산길을 건너는 것이다. 내 안의 산, 내 안의 떡 버티고 서있는 산, 내 안을 독차지하고 있는 산, 내 안의 태산준령을 정복하는데 오히려 더 큰 뜻이 있다. 내 안의 쭈뼛한 고봉에 올라 내 안의 완고한 능선을 짓밟고 뭉개어 평평한 평지로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다. 오만 자랑 위선 나태 안일 거짓 미움 시기 탐심 교만 등, 이 고루한 것들이 쌓여 이루어진 내 안의 완고한 봉우리들을 가루가루 부스러기로 갈아 천불동계곡의 바람에 비룡폭포의 포효하는 소리에 흔적 없이 날려버리고 가벼이 가벼이 돌아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산을 오르지 않는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것은 산을 타고 정상에 오르는 데 결코 있지 않다.
오히려 내 안에 터무니없이 우뚝 솟아 떡 버티고 있는 교만과 인색과 자랑과 나태와 안일과 이기심과 탐심과 허영과 거짓과 위선의 고봉을 하나하나 점령하여 굴복시키고 이 뿌리 깊은 근성을 허물어내어 '나'를 죽이는 일이다. 내 안에서 나를 갉아먹는, 나를 결박하고 나의 자유를 구속하는, 나의 동굴 속 독거미,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타란툴라를 색출하여 섬멸하는 일이다. 내 안에서 나를 파멸시키는 죄악의 근원을 뿌리째 제거하기 위해, 맑은 나를 회복하기 위해, 본래 나의 순결을 되찾기 위해, 낮아지고 낮아지는 길을 가기 위해, 나는 산을 찾는다. 나는 산문 앞에 서서 늘 산이 나에게 문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산의 소리 산의 가르침을 되새김한다. 산이 나에게 원하는 정결함과 순진무구함에 이르려고 애를 쓴다. 물소리와 새소리와 꽃의 미소는 산의 뜻 산의 마음의 징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산을 오른다, 는 말을 사용하기를 꺼리거나 망설이며 주저한다. 나에게 있어 산은 오르는 대상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등산(登山)’, 이란 말도 잘 사용하지 않으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에게 산은 공경의 대상이요, 도덕의 길이요, 자연의 길과 사람의 길을 관조觀照하는 경건한 도량道場이다고 단호히 독백한다.
이 세상 그 무엇이 산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랴, 산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랴, 산보다 더 평등한 세계가 어디 있으랴, 산처럼 등급 없고 차별 없는 무등無等한 천지가 어디 있으랴, 산보다 온유하고 인자하며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기다려 나를 불러주고 나를 맞아주는 곳이 이 세상 어디 또 있으랴,
내가 산에 가는 은밀한 까닭...!
(솔물새꽃의 설악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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