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우주는 과연 우리만 홀로 살고 있는가?
어느새, 벌써, 6월이 왔다. 참으로 쏜살같이 빠른 세월을 느낀다. 뜨거운 열병처럼 타올랐던 4월과 5월의 봄은 6월, 신록의 초록바다를 위한 세례식이요 정결식이요 긴 연단의 시간이었다. 그 분주한 헌신과 정성이 이루어놓은 6월의 길, 그 문전에 들어선 것이다. 참, 쏜살같다는 말을 다시 실감한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반을 다 살아버렸다니...!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변화의 흐름은 무엇일까?
낯선 세계로의 여행은 늘 호기심과 기다림이다. 많은 시간과 경비를 여행에 지출하는 것도 존재하는 동시대의 시공에 대한 낯선 질문과 그 기다림, 호기심 탓일 것이다. (나는 다시 이 말을 하고 넘어가려 한다. 용서해 주실 줄 믿는다!) 아주 낯선 세계를 여행한다는 그 호기심과 설렘으로 한 권의 책 속으로 떠나보시길 당부드린다. 책이든 유럽이든 산이든 낯선 세계와의 만남은 여행이니까,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의 길을 낯선 여행으로 생각하고 한 번 떠나보자, 사실 우리가 사는 길은 모두가 낯선 세계로의 여행이다. 그 여행의 기분으로 오늘 하루도 살아보면 어떨까,
조금 낯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그냥 따라 읽어보자, 아주 작은 느낌만, 아주 미미한 꿈틀거림만 있어도 글을 읽는 보람은 이미 다 누린 것이다, 책을 다 읽을 필요도 없지만 읽은 책을 다 알 필요는 더욱 없다. 독서는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여행이다. 여행에서 보람을 향유하려면 나를 비우고 떠나야 한다. 나를 비워야 다른 세계를 들이는 여백이 생기니까,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을 다 비우고 떠나 채워서 돌아오는 일이 여행이다. 독서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우주는 과연 우리만 홀로 살고 있는가?
신은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했을까, '우주창조'라고 하는 이 엄청난 일이 어떤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이 없이 가능했을까?
이런 질문과 호기심은 내가 과학에 관한 책을 읽는 내내 풀리지 않고 증폭되기만 하였다. 그리할지라도 감사한 일은 이런 의문과 질문과 상상은 나에게 달콤한 영감의 일렁임이 되었고, 미욱한 나의 상상의 문을 여는 노랑 나비가 되어 나의 상상을 이끌곤 하였다. 폴 데이비스의 <침묵하는 우주>를 다시 펼쳐보게 한 것이다. 아는 만큼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을 풀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꿈꾼다. 늘 여행을 떠난다. 책 속으로의 여행이든 산으로의 여행이든 유럽으로의 여행이든 그 길은 나의 질문과 호기심을 채우는 한결같은 길이니까,
“나는 이 해답이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지 간에, 전에는 종교적인 의문이었던 것을 과학이 대신하여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점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현대물리학의 폭넓은 중요성을 입증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종교적인 견해들을 끝까지 배제하려고 애를 쓰긴 했지만, 물리학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은 내 개인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나는 나와 다른 의견들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리고 더 많은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려 한다.
다만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근원적인 동기 자체가,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라는 나의 확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폴 데이비스는 이 책 후반부에서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우주의 존재에 관한,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에 관한 '큰 질문'을 품고 살아온 폴 데이비스는 아주 겸손하게 고백한다. 창조주 신에 대한 믿음과 과학자의 단순한 호기심을 초월한 우주의 진실과 존재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인류 모두에게 부여된 '큰 질문'이 아닐까,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자체가,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라는 나의 확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얼마나 간결하고 정직하고 투명한 고백인가,
(주)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폴 데이비스(Paul Davies)의 『침묵하는 우주(The Eerie Silence)』는 이제 환갑을 맞은 세티 프로젝트의 어제, 오늘, 내일을 살피면서, 세티 프로젝트의 과학적 방법론과 목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 우주에서 우리 인류가 유일한 존재인지, 아니면 우주의 섬뜩한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명과 지성의 본질은 무엇인지 등등을 근본적으로 탐구한다. 폴 데이비스는 본래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시간의 본질 같은 ‘큰 문제’들을 연구하는 이론 물리학자다.
세티(SETI), 즉 외계 지성체 탐색(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연구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2020년이면 '세티' 프로젝트는 6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우주는 절망적으로 섬뜩한 침묵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로 우주에는 우리만 있는 것일까? 여전히 우주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과 우주에 대해...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인 폴 데이비스의 지금까지의 연구업적과 <침묵하는 우주>는 이러한 의문들에 대하여 시험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열정의 과정이었다. 이 해답들은 어디까지나 자연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한 물리학자의 견해이지만 다른 누군가의 길에 고스란히 작은 노둣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독자들에게는 광대한 우주와 나의 존재의 시간과 나의 근원에 대한 작은 질문과 호기심이 꿈틀거리게 할 것이다.
폴 데이비스는 말한다. “내가 제시한 해답들이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물리학이 그러한 해답을 제시할 만한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고 믿는다. 색다른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과학은 신에게 접근하는 길을 종교보다 더 확실하게 제시해준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이론물리학자도 아니요 우주론학자도 전파천문학자도 아니지만, 한 인간 존재로 지금 숨 쉬며 살고 있는 이 우주에 관해 늘 상상하며 살아가고 있다. 폴 데이비스를 읽는 동안 한 물리학자가 탐색해 놓은 지적 모험의 세계를 나는 여행해 보는 것이다. 여행은 모든 것을 이론적으로 밝히는 학문의 길이 아니니까 나에게 편안할 뿐이다. 여행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길이어도 괜찮고, 그 길에서 얻은 생각이나 의문이나 감탄이나 발견의 흔적들을 아주 조금 담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만인 것이다. 다만 독서를 통한 낯선 세계로의 여행이 나의 인식을 확장해주고 나에게 보다 근원적인 진실을 찾아가는 질문의 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시와 글의 영감의 출구가 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우주에 우리만 홀로 존재하는가"
1. 화성에 생명체는 과연 있을까?
2. 지구 같은 행성에 외계 생명체가 있을까?
3. 외계 생명체는 지구의 인류와 얼마나 다를까?
4. 외계 생명체는 위험할까? 우리는 왜 외계 생명체에 대해 알아야 할까?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4가지 대의문'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을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독서 여행은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나와 우주의 존재의 실마리를 알아가는 길이었으니까,
그렇다, 우리와 동시대 누군가는 참으로 놀라운 '큰 질문'을 궁구하고 있다. 생명이 탄생하는 심오한 원리가 자연에 있다면 또 여기에 지성이 더해지는 일이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 곳곳에서 지금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많은 천문학자와 물리학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라는 평범한 일상의 존재는 과학자들의 이 거대한 지적활동과 연결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성찰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다음 주라도 갑자기 우주에 인간만 있는 게 아니라는 증거를 얻게 된다면, 그것이 인류에게 미치는 충격은 얼마나 클까? 내가 ‘우주에는 우리만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평생 탐구해 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폴 데이비스의 고백)
우주cosmos, '우주의 침묵'은 언제까지일까. 폴 데이비스의 <침묵하는 우주 The Eerie Silence>는 바로 이 질문, 과연 ‘우주에는 우리만 살고 있을까’에 대답할 기회를 어떻게 확장해갈 수 있을까를 탐구한 놀라운 역작이다.
20230601,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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