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에 가면 오래된 이스턴 스테이트 감옥이 있다. 지금은 수인을 가둔 감옥의 구실은 하지 않지만, 수인이 아닌 낯선 여행객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 이스턴 스테이트 감옥은 1829년 건립하여 문을 열 당시는 일류 호텔급 수준의 시설을 갖춘 초현대식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지은 이 교도소는 시설은 좋았지만 범죄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기 없는 교도소가 되어 점점 죄수들이 줄어들자 감옥의 관리들은 깊은 고민이 늘었다고 한다. 많은 재정을 들여 지은 감옥이 제구실을 못 한 것이다. 투자 대비 이익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결국 이곳은 1970년대까지 교도소 시설로 사용해 오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활용하며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감옥의 시설이 좋으면 뭐 하겠는가, 감옥은 감옥인 것이다.
이 감옥의 특징은 죄수들이 거하는 모든 방은 빛이 들어오는 창이 보이지 않고, 오직 감옥 안 복도의 중앙 천정에서만 빛이 투사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 현대식이라 냉난방도 잘 되고 방 안에는 TV나 테이블 의자도 갖춰진 화려한 수준의 호텔에 버금가는 교도소였다. 당시 교도소 시설물로는 혁명적이어서 세계 교도소들이 이를 본떠 지어졌다.
이 훌륭한(?) 시설을 갖춘 이 감옥의 특징은 죄수들을 철저하게 분리 고립시키는 것, 철저하게 죄수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건물 설계라는 점, 교화를 위한 교육도, 식사하는 일도, 아침 운동을 하는 일도, 언제나 죄수들 혼자서 하는 고립과 침묵을 엄격한 규율로 강요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여 오직 침묵만을 요구하는 것이 이 감옥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인간과 인간의 격리 단절 고립이 최고의 벌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 후, 죄를 지어 다시는 감옥에 오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필라델피아 이스턴 스테이트 페니텐셔리(Eastern State Penitentiary,1829~1971)는 최초 초현대식 감옥으로 방사형 판옵티콘 구조로 지어졌다. 영국의 공리주의자 밴담이 설계한 영국 런던의 판옵티콘 원형감옥을 생각하게 한다. 오직 감시와 처벌만이 능사였던 ‘원형감옥의 시절’이 오늘 지금 이 땅 가운데도 곳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정신이 번쩍 든다.
(현대인은 넓은 의미로 생각하면 모두가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아주 사소한 객체에 불과한지 모른다. 더 놀라운 것은 현대인은 이 사실을 전혀 의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권력지향의 소수의 인간과 집단은 굳건히 득세하고 있으며 지금도 버젓이 활보하며 만행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하려 한다. 현대사회의 모든 조직은 그 권력을 지향한다. 내가 여기서 본 것은 판옵티콘 감옥이 오늘날 모든 권력의 속성을 어쩌면 잘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판옵티콘의 특징은 죄수들이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결과 죄수들은 감시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여 순한 양(?)이 되고 만다고 하는데, 이 땅의 나와 나의 동료와 나의 가족과 나의 이웃들의 존재와 삶에 대해 아픈 고민이 발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권력이란 무엇인가? 그냥 쉽게 떠오른다. 돈 아파트 지위 지식 이름 학벌 오만 자랑 국회 정부 대통령 검찰 학교 정부 동사무소 구청... 다시, 그렇다면 죄수들은 누구인가? 권력의 감시와 처벌이 두려운 수인의 얼굴은 누구인가?
방대한 <감시와 처벌>을 저술한 미셸 푸코의 생각에 따르면,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스러운 존재라고 믿는 인간은 사실 권력에 의해, 감옥에 의해 감시 통제되고 있는 아주 작은 객체일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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