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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생각하기 위한 독서

나의 길, 맑고 밝은 물살의 강으로 흐르고 싶다!

by 솔물새꽃 2023.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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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鴉靑의 그윽한 하늘과 연두빛 초목을 비춰주는 물처럼, 있는 그대로를 다 안아주는 호수처럼, 차별하지 않는 평등처럼...!
아청鴉靑의 그윽한 하늘과 연두빛 초목을 비춰주는 물처럼, 있는 그대로를 다 안아주는 호수처럼, 차별하지 않는 평등처럼...!

나의 길 맑고 밝은 물살의 강으로 흐르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장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마종기, <寓話우화의 江강>

 

무수한 눈빛들이 갈매기의 기억속에 빛나고 있다&#44;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인식하는 길이요 그 길을 지켜내는 길이다!
무수한 다른 갈멕이의 눈빛과 소리들이 이 갈매기의 기억속에 빛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인식하는 길이요 그 길을 함께 지켜내는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는 세상을 살 수 없다. 바람처럼 알게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숱한 인연의 맺음과 풀림의 길, 그래서 인생의 길을 江에 비유하는지 모른다.

 
강물은 처음부터 절로 길고 깊고 품 넓은 강으로 흐르지 않는다. 강물은 흐르면서 이골 저골 크고 작은 도랑물을 보듬어 안으면서 수심은 점점 깊어지고, 강의 가슴은 넓어지고 맑아지면서 긴 장강으로 흘러간다. 생애의 길이 허허하고 외롭고 쓸쓸한 나 홀로 가는 길일 성싶어도, 우리의 마음 문전을 들고나는 무수한 얼굴과 이름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생애의 길은 그물망처럼 촘촘한 관계 속에서 소중한 한 점으로 존재하는 것이 나의 길이다. (바다의 그물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매듭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큰 그물의 구실을 하는가, 나는 이것을 점과 점의 연결 고리, 연결점, 곧 관계라 믿는다. 이 거대한 그물이라는 ‘관계의 망’은 한 점 매듭이 풀리거나 끊어지면 그물로써 제구실을 다 할 수 없다.)
 

끊임없이 지속하는 인연의 흐름을 강물에 의탁하여 담담하고 절절하게 애틋한 그리움의 어조로 노래하고 있는 시가 마종기의 ‘우화의 강’이다. 유유한 장강長江은 처음부터 큰 물줄기로 흐르지 않는다. 그 근원인 옹달샘을 떠나 흐르기 시작한 작은 물줄기는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유장한 장강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옹달샘을 떠나 흐르기 시작한 작은 물줄기가 유장한 장강으로 흐를 수 있기를... 거룩한 소망 하나 품고 오늘도 흐른다!
옹달샘을 떠나 흐르기 시작한 작은 물줄기가 유장한 장강으로 흐를 수 있기를... 거룩한 소망 하나 품고 오늘도 흐른다!

그렇다, 우리가 ‘세상에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도 다 강물과 같은 길이다.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흐름이 한결같은 하나가 아닌가. 누구나 새로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서먹하고 밋밋하기만 하다. 누가 되었든 첫 만남은 어색하기 마련이지만 자주 만나 몸과 마음이 서로 익숙하여 허물없는 관계의 물길이 열리면 ‘‘한 세상 유장한 장성의 물길’을 이뤄 흐르는 것이 인간사의 인지상정이다.
 
이 시의 화자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얼핏 강을 보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는 듯싶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강물은 쉼 없이 흐르면서 스스로 깊어지고 물에 뜬 부유물을 가라앉히며 저절로 맑아지는 자정(自淨)의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다. 강은 이렇듯 흐르면서 다른 물줄기를 받아들여 넓고 깊은 장강을 이루어 흐른다. 그래서 시인은 자연의 강물처럼 변함없는 인간관계의 ‘물길을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고 아주 간절하게 고백하고 있다.
 
한 해 두 해, 해가 바뀔 때마다 가을 담쟁이덩굴에 잎이 한잎 두잎 쇠락해 가듯이 멀어지고 떨어지고 잊혀가는 사람들, 그 허망하고 허술한 인연들, 숭고한 인연의 끄나풀을 쉬이 내동댕이치고 마는 사람들, 언제 알고 지냈느냐는 식으로 쉽게 돌아서고 매정하게 마음 문을 닫고 갈라서는 사람들, 모든 것을 서로 ‘네 탓’으로 돌리고 마는 사람들, 나 자신한테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남(상대방, 타인)에게는 지극히 엄격한 사람들, 얼마나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인가, 왜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깊고 맑은 인연의 강물로 오래 흐를 수 없단 말인가, 오래된 사귐과 우정을 헌신짝 버리듯 언뜻하면 등 돌리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헐뜯고, 서로 미워하며 비난하고, 눈꼽 티만큼도 남이 잘되는 것을 너그럽게 보아주고 기뻐해 주지 못하는 인색한 사람들, 아주 작아서 더 초라한 사람들, 우리는 더 큰 가슴으로 살 수 없는가, 아래로 아래로 낮아지고 낮아지는 바다의 마음은 될 수 없는가, 오직 돈 밖에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없는 사람들, 눈물이 말라버린 비정한 가슴에 짜디짠 소금꽃만 펴내며 모질게 등 돌리며 살 수 있단 말인가, 오직 ‘나’밖에 모르는 사람들, 고독한 ‘존재’의 관계 맺음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 용서할 줄 모르고 타인의 잘못과 실수를 끈질기게 추궁하는 사람들, 건성으로 슬그머니 손잡았다가 돌아서면 금세 남이 되고 마는 사람들, 사람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멀어질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사는 길은 이 명제를 증명하며 묵묵히 길을 갈 뿐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멀어질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사는 길은 이 명제를 증명하며 묵묵히 길을 갈 뿐이다!

지금쯤 우리의 강은 어디쯤 흐르고 있을까, 지금쯤 나의 강은 얼마나 깊어졌을까, 또 얼마나 우리의 강은 맑게 흐르고 있을까, 한 십 년 만나지 않아도 물길 마르지 않는 맑고 깊은 인연의 강을 이어갈 사람은 어디 없을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슬플 때 함께 슬퍼하고 기쁠 때면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맑은 사람, 늘 먼저 친구의 사연을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며 “잘했다”고 손뼉 쳐주는 사람, 등 다독여줄 뿐 말없이 말없이 친구의 사연에 공감해 주고 함께 울어주는 눈물을 간직한 사람, 친구의 좋은 일에 진심으로 함께 좋아해 주는 그런 사람과 긴 인연의 강을 맑게 오래 흐르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자랑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 산업화 근대화 기계화 과정에서 인간이 무참히 허물어버린 산과 강과 바다와 들판의 자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뉘우치고 사죄의 참회를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들 마음 마음 가운데 들풀이나 나무나 들꽃이나 벌나비나 새들을 향한 평등한 마음과 경외심을 회복할 때, 정말이다, 풀 한 포기의 소중함과 해안의 뻘밭과 숲의 새들과 바람 한 줌의 숭고한 생명성 앞에 감탄하는 마음을 품을 때, 지구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목숨을 나의 목숨처럼 아파할 때,  화평한 대동의 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나는 얼마나 사소하며 연약한 외로운 존재에 불과하는가&#44; 바다에 이르러 긴 일생을 끝낸 강을 보아라!
나는 얼마나 사소하며 연약한 외로운 존재에 불과하는가, 바다에 이르러 긴 일생을 끝낸 강을 보아라!

그리하여, 다시 그리하여, 인간은 아주 사소한 존재이거나 연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군림해 왔던 독보적 아집과 배타적인 권좌에서 스스로 내려올 때, 이 지구는 진정으로 지배와 탐욕과 불평등과 차별이 없는 화평한 조화의 길(=자연의 길)에 다다를 것이다.(무슨 헛소리를 하느냐고요...! 아니다, 이런 무형의 생태적 인식과 사유가 넘쳐날 때 이 세상은 놀라운 혁명의 환희를 소리 없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맑은 물이 흐린 물을 맑히듯이 맑은 사람과 함께 섞이어 나의 지치고 수고로운 영혼을 잠잠히 맑히고 싶은 것이다. 나의 흐린 영혼을 더 맑게 밝게 빛나게 하고 싶은 것이다. 흐를수록, 흐를수록 맑아지고 깊어지는 물살의 강물로 바다에 함께 이르고 싶은 것이다.
 

너와 나의 강이 다 하는 곳은 어디일까&#44; 망망한 바다&#44; 그 한가운데 나와 너의 섬이 있을 뿐이다!
너와 나의 강이 다 하는 곳은 어디일까, 망망한 바다, 그 한가운데 나와 너의 섬이 있을 뿐이다!

 
20230502, 솔물새꽃의 법성포 백수해안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