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많은 기쁨이 있다고...'
날마다 출렁거리는 바다의 고깃배가 우리의 인생이라고, 비틀거리고 흔들리고 넘어지는 길이 우리의 길이라고, 작은 고깃배의 바다라고, 살아온 인생길을 돌아보면 기적이 아닌 날이 없었다고, 그 기적의 날들이 나를 여기까지 지금까지 견인해 왔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날의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날의 기적이 된다고...'
맞다! 정말 맞다! 명철한 해조의 울림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노래가 아니었으면 상투적이고 진부한 설득이 되고 말았으련만은, 시인의 관조와 언어 조탁을 통과한 '어부'는 감탄과 연민의 반향을 일으킨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어부漁夫 - 김종삼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을 생각하면 진실한 삶의 태도와 의지를 읽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인 조르바’와 ‘영혼의 자서전’을 읽을 때처럼 치열한 삶과 실존적 자아의 자유가 왜 중요한 지향이 되어야 하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와 실존의 질문과 고뇌를 어부의 삶으로 치환하여 평이하게 그려낸 시가 김종삼의 ‘어부’이다. 바다의 풍랑처럼 늘 고난과 희망이 교차하는 인생의 바다, 생애의 사막, 그 지난한 길에서 우리는 넘어지고 기어코 다시 일어서며 버텨왔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다시 비틀거리고 스러지며 나그네 길을 가야 한다. 단 한 순간도 평이하고 평탄한 날이 없는 길이 인생길이다. 까뮈의 시지프스처럼! 이것이 인간 실존의 투명한 모습이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의 길임을 수긍하리라.
구차한 설명을 더하여 무엇하랴만, 바다와 고깃배와 어부가 무엇이겠는가, 바다가 이 세상이라면, 어부는 자신의 존재를 지켜내며 생애의 강을 건너는 인간을 비유한다. 그리고 고깃배는 연약한 인간이 의탁할 최소한의 방편이나 수단인 것이다.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의 서사처럼 인간은 세상의 거친 풍랑과 상어 떼의 공격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 체념하고 싶은 나약함, 내 안의 가장 무서운 독거미인 허무와 열등감과 삶에 대한 회의 등, 나약한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 부정적인 상황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서 인생의 광야는 사막이요 밀림이요 바다인 것이다.
그러나 헤밍웨이와 김종삼 시인은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우리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생의 진실을 보여준다.
바다의 노인과 어부처럼 바다와 싸우며 분투하는 삶일지라도, 시지프스처럼 무의미한 반복을 지속할지라도, 인생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칠흑의 바다 한가운데서 불빛을 찾아 노를 젓듯이 내일을 다시 떠오를 태양을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그 어떤 고난의 상황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내가 살아온 어제의 기적이 내가 살아갈 오늘의 기적이 다시 된다고, 어제의 나의 길이 오늘 가야할 나의 길이 된다고, 그렇게 참고 기다리며 사노라면 틀림없이 많은 기쁨이 있다고, 풍랑에 흔들리고 뒤집힐 때도 있지만, 꾹 참고 사노라면 화사한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바다의 삶을 살아온 ‘노인’과 ‘어부’는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다. 다 지나가리라, 굳게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의연한 통찰의 시선을 품어야 한다. 조급해하지 말고 잠잠하라, 기다리라, 참으라, 는 말 뿐이다. 잠잠히 기다리는 자만이 생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며 살아온 터이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 위에 존재한다. 흐르지 않는 시간이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흐름일 뿐이다.
칠흑의 밤은 여명으로 이어지고 찬란한 빛의 아침으로 끝내 흐른다.
아무리 심한 광풍을 동반한 태풍일지라도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고요하고 청명한 아침 햇살을 보내오지 않는가, 잔잔한 바다를 보내오지 않는가, 풍랑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는가, 그 고난의 길 가운데 인생의 결실이 여물어가는 것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솥작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노래하고 있지 않는가,
결국, 김종삼의 ‘어부’는 인생의 길은 ‘어디까지’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는 길이 소중한가를 형상화한 노래이다. 인생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가는 산행이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가 아니라 '어떻게' 지나가는 길이냐가 중요할 뿐이다. 지나온 길의 아픔 시련 번민 고통이 살아갈 날을 견인하는 동력이 된다고, 다만 기다리라고 잠잠히 기다리라고, 김종삼의 '어부'는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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