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생각하기 위한 독서

봄은 쓰러질 때까지 봄의 길을 간다!

by 솔물새꽃 2023. 5. 21.
728x90

봄의 길에 느럭느럭 찔레꽃이 피기 시작한다! 봄이 다할 때까지 봄은 쓰러질 때까지 봄의 길을 느림느림 간다!
봄의 길에 느럭느럭 찔레꽃이 피기 시작한다! 봄이 다할 때까지 봄은 쓰러질 때까지 봄의 길을 느림느림 간다!

비와 빗소리의 감촉이 살아오는 오월! 장독대 돌담 그늘에 감꽃이 떨어지는 소리도 멀리서 들려온다, 소박한 감꽃의 눈빛! 온유한 가슴과 물빛 순후한 향기를 간직한 나의 벗들, 때 묻지 않은 벗들이랑 한 시대를 사는 이 찬란한 눈물! 황홀한 오월의 물결이 청보리 바다를 건너오는 봄바람 봄 햇살의 영감이다.

봄이 오고 가는 길에 느럭느럭 찔레꽃이 피기 시작한다. 봄은 봄이 다할 때까지 봄이 쓰러질 때까지 봄의 길을 느림느림 간다. 멈추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봄이 다 하는 그날까지 봄의 길을 간다. 이 거룩한 자연의 길을 동행하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오늘은 봄을 보면서 중도이폐中途而廢, 논어의 이 구절에 대한 다산 정약용의 해석을 음미해 보려 한다네,

 

내가 좋아서 가는 길이라면 그 지향하는 삶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네, 자신이 가는 길이 인간의 고양된 삶에 대한 충만한 의미를 누리는 길이기 때문일세, 누구나 한 생애의 강을 건너가는 나그네, 아니다, 누구나 한 번은 한 생애의 길을 건너가야 하는 유목인의 후예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까지’ (몇 살까지 사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생애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디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는지는 문제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길을 걷다가 더 이상 힘이 다하면 쓰러질 뿐이다. '어디까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갈 것인가' 가 문제이다. 나 자신이 좋아서 가는 길이라면 바라보고만 있지 않고 그 길을 나서는 것이다. 그 길을 향해 묵묵히 우보천리牛步千里로 가다가 가던 길에서 쓰러지는 것이 덧없는 생애의 길이리라. 중도이폐中途而廢, 다산이 읽은 중도이폐의 의역이다. 맞다! 가는 길에서 쓰러질 때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보다 '어떻게 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몸이 늙는 것도 잊고, 세상 풍조 회오리바람 치는 것도 잊고, 나의 능력이 부족한 것도 잊고, 길을 다 가기엔 나의 나이가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달팽이처럼 느림느림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걸어가다가 걸어가다가, 해 다 저문 것도 모르고 걸어가다가 서산 등성이에 저녁놀 스러지듯이 길 끝에서 쓰러질 때까지 간다. 길을 걸어가다가 쓰러지고 나면 결국 끝나는 길, 이것이 중도이폐中途而廢의 길이다,

 

길은 '어디까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갈 것인가' 가 문제이다
길은 ' 어디까지 ' 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 어떻게 갈 것인가 ' 가 문제이다!

등에 진 짐은 가벼워야 갈 길이 수월하다. 마음의 짐도 다 내려놓아야 멈추지 않고 나의 길을 지향할 수 있다.

뜬금없이 길을 가로막는 인생의 완고한 장애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의지와 힘은 또 얼마나 부침이 잦은가, 그래도 가야 하는 길, 그래서 생애의 길은 뜨겁고 격정적인지 모른다. 때로는 기쁨과 보람이 흐르는 길이 이어질 때도 있지만 가끔은 비애와 신음과 두려움이 밀려올 때도 있을 것이리라. 그러므로 마지막 쓰러질 때까지 자기가 지향하는 길을 가는 중도이폐中途而廢의 길은 황홀하면서도 비장하고 서러운 길이다. 작렬하게 스러지는 저녁노을이 찬란하면서도 허허한 우수의 길인 것과 이런 까닭이다.

 

중도이폐中途而廢, 내가 좋아 가는 길, 글을 쓰며 가는 길에서 쓰러질 때까지 글 쓰는 길을 가기로 한 다짐이 일상의 골격을 이루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글을 읽어줄 독자가 고프다는 것, 글의 행간을 함께 구석구석 쉬엄쉬엄 깊이 거닐어 줄 독자가 간절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망망한 바다의 섬이니까, 인간의 연약함이이요 외로움이며 한계이리라, 나의 글 저류를 흐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독자를 만나기가 힘들다는 것과 글을 읽어볼 여유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는 것을 글을 쓰는 길을 가면서 알게 된 것은 너무 슬픈 일이요 쓸쓸한 일이었다.

그리할지라도 정말 그리할지라도, 단 한 사람, 단 한 사람의 독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을 때, 단 한 사람이 나를 읽어주고 있음은 알았을 때, 바로 그 한 사람을 만났을 때, 하늘에서 내리는 놀라운 황홀함, 이 찬란한 황홀한 경험이 비록 순간일지라도 내가 지향하는 글 쓰는 일에 열정적인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안 것은 아름다운 발견이었다.

 

석모도 민머루 해변에 삐비꽃이 피었다고, 나에게 늘 봄의 영감을 보내준 벗을 위해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석모도 민머루 해변에 삐비꽃이 피었다고, 나에게 늘 봄의 영감을 보내준 벗을 위해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 한 사람은 아주 작은 나를 미욱한 나의 글을 잘도 읽어준다.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낸다. 나의 글의 수심 깊은 데까지 천착하는 읽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바로 그 한 사람의 격려와 공감과 응원이, 그 한 사람의 열린 큰 앎과 인정이 나를 이끌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매일매일 만나는 일상을, 혹은 친구가 보내온 문자나 카톡을,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는 가족을 너무 건성으로 지나쳐 온 것은 아니었을까, 깊이 회개하는 마음을 갖는다. 나라는 존재를 지금껏 있게 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도 다시 되돌아보며 참회한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다 나의 그늘이었는데, 지상의 한 존재를 살게 한 골격이었는데, 모든 것이 내가 살아가는데 귀하지 않은 것들이 없는데,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중한 것들이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나의 존재를 빛내주는 고마운 사람들인데,

 

우리는 너무나 자기 자신과 자신의 완고한 앎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과 눈앞의 물욕에 사로잡혀 일상의 벗들과 그들의 마음을 함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그들의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깊은 진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부초의 인생길, 우리의 자랑이 무엇이란 말인가, 녹슬어 쇠락해 버린 계급장, 다 닳아버린 명문대 성공 대기업 돈 아파트 독선과 아집과 교만... 이제 그만 버릴 일이다. 이젠 훌훌 날려버리고 살 일만 남았다. 단순하고 간결하고 가벼운 유목인의 길 채비하여, 먼 길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감꽃 하나에도 감탄과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 있다면 틀림없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일 것이다!
감꽃 하나에도 감탄과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 있다면 틀림없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일 것이다!

가끔은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지만,

봄이 가는 길에 느럭느럭 찔레꽃이 피기 시작한다. 봄은 봄이 다할 때까지 봄이 쓰러질 때까지 봄의 길을 느림느림 간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에 감꽃핀 유년의 넓은 마당이 보인다. 빗소리에 젖어오는 눅눅한 감성의 오솔길을 거닐어 보았다. 나의 이 산책을 동행해 줄 모든 분에게 평강을 기원드린다!

 

20230521,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