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처럼 평등平等하고 무등無等하며 동등同等한 세계가 어디 있으랴, 하늘처럼 공평하고 인자하며 한없이 너그러운 곳이 이 세상 어디 또 있으랴, 하늘 아래 사는 우리의 가장 빛나는 자랑이요 축복인 하늘, 하늘은 영혼이 꿈꾸는 길이요 순결한 존재의 갈망이 흐르는 구원의 강이다!
우리 모두 하늘 한 번 더 바라보며 살자, 오늘도 하늘을 꿈꾸며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보자, 구원의 먼 길, 하늘을 바라보며 진실한 생을 살자!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의 일절 부분 인용.
나는 유난히 푸른 아청鴉靑의 하늘을 보면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나도 모르게 암송한다. 이 구절을 암송할 때면 내 가슴은 늘 하늘과 영원, 우주와 나의 본질, 외경과 연민을 향한 정념으로 뜨겁다. 잠자는 나의 영혼이 번뜩 눈을 뜨는 것 같다.
아청의 하늘을 보면 어디든 하늘을 향해 시선을 못 박고 한없이 서 있는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이도록 그윽한 하늘을 바라보는 이 습관이 길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 설악이든 지리산이든 한라산이든 산하 어디를 가다가도 이 아청의 하늘을 만나면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하늘을 본다. 눈물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다!
아청빛 하늘, 그 속에는 나의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시간의 강이 아직도 그곳에는 출렁이며 흐르고 있다. 내가 지나온 길들이, 나를 스쳐간 숱한 인연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올망졸망한 섬으로 떠 있다.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리듯이, 이렇듯 아청鴉靑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라져 간 모든 것들이 내 안전에 하나하나 펼쳐진다. 내 마음이 하늘을 지향하는 오롯한 까닭, 푸른 하늘을 기다리는 보람!
먼 하늘을 보면 이 땅의 결핍을 잊는다. 이 지상의 문제들이 아주 사소하게 여겨진다. 먼 데 꿈을 꾸고 살면 가까운 데 있는 부족함도 아픔도 섭섭함도 잊게 되듯이, 먼 하늘을 쳐다보면 혼란스러운 마음의 소요, 훤화, 갈등, 미움, 혹은 마음의 미혹들이 나도 모르게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내 안의 아청빛 하늘, 유년의 강마을에서 처음 본 그 봄날 하늘이 다시 돌아와, 나를 자운영 만발한 고향 들녘으로 데리고 간다. 그 길은 탐진강을 만나는 길이요, 진즉 하늘의 별이 된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창밖 교정의 하늘이 유난히 아청鴉靑으로 넘쳐흐를 때면 맑은 영혼의 눈망울 품은 우리 아이들과 나는 이 시를 읽고 암송하며 맘껏 하늘을 들이며 하늘이랑 한때를 보내곤 하였다. 이때면 이 고운 시를 우리에게 모국어로 남겨준 시인 신동엽을 예찬하는 마음 절로 피었고, 그의 고향 백마강의 하늘을 우러르듯 그를 동경하며 우리의 마음을 푸르게 맑히곤 하였다. 우리가 따스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운 것들을 품는 일이니까, 우리가 뜨겁게 살아간다는 것은 눈물 어린 가슴을 품고 사는 일이니까,
오늘도 시를 읽는 내내 나의 마음속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러노라면 아청의 봄하늘 흐르는 고향 탐진강도 보이고 지리산 촛대봉의 하늘도 보인다. 그뿐인가, 에델바이스를 만난 설악의 신선봉 그 아늑한 하늘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시인이든, 나그네이든, 감옥의 수인이든,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든, 고단한 생애의 길을 걷고 있는 가난한 사람이든,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든, 몸의 병고로 아파하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하늘은 놀라운 영감과 상상력과 감정순환의 순간을 부여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나를 보자, 하늘을 보듯 세상을 보자!
하늘처럼 평등平等하고 무등無等하며 동등同等한 세계가 어디 있으랴, 하늘처럼 공평하고 인자하며 한없이 너그러운 곳이 이 세상 어디 있으랴, 하늘 아래 사는 우리의 가장 빛나는 자랑이요 축복인 하늘! 우리 모두 하늘 한 번 더 바라보며 살자, 오늘도 하늘을 꿈꾸며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보고 구원의 먼 길을 바라보자!
(20230615, 솔물새꽃의 오금동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