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 보내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다! 참다운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아이는 머리 큰 아이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아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가슴이다. 가슴에 눈물이 없는 아이는 어디서 오는가,
교육은 부모의 말과 행동, 어른들의 생각과 언어, 그리고 이 사회의 가치와 지향이 좌우한다. 이 사회는 거대한 교육의 산실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보는 대로 따라서한다. 어른들이 가는 데로 따라간다.

(이 글을 꼭 끝까지 인내하며 읽어주길 원한다. 작금의 우리 현실 중에 교육만큼 중차대한 일이 어디 있으랴, 이 작은 범부의 외침을 무시하지 마시고 들어주시면 좋겠다! 우리는 이 세상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길이 되어야 하니까,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 할 고귀한 존재이니까, 그리고 이 세상 모두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을 더 아름답게 가꿔 물려주어야 하니까,)
아이들은 숲의 나무와 꽃과 새들과 같아서 이 거대한 사회의 숨결과 바람과 향취를 호흡하며 자란다. 가정이나 학교나 학원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의 거대한 공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훨씬 지대하다. 어른들이 지나간 길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길이 되고, 어른들의 생각과 말과, 가치와 지향은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스며들어 아이들의 꿈이 되고 동기가 되고 믿음이 된다. 아이들은 가정의 부모와 학교의 선생님과 이 사회 어른들의 그림자를 보며 자라는 향일성 식물과 같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단도직입 들어가 보겠다. 교육은 농사다, 교육은 경작이다, 는 말을 자주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책 읽기를 원하면 부모가 먼저 책 읽기를 하면 된다. 신앙생활 하는 신실한 아이로 자라기를 원하면 부모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항상 기도하고 경전을 읽으며 믿음의 삶을 보여주면 된다. 남을 돕기를 원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먼저 도와주고 돈도 꾸어주며 베푸는 삶을 보여주면 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교육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두 아들과 형제와 제자들에게 보낸 서찰을 묶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작과비평사)를 읽으면,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효孝와 제第의 도덕이 부재한 현대인의 삶의 방향을 재점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말로 가르치는 것에 의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언행을 보면서 그대로 닮아간다. 남의 흉을 보지 말고 덮어주고 용서하라고 말하면서 밥상머리에서 부모가 하는 말은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을 험담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말이다. 물질보다 정신의 고귀함을 더 우선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디서나 돈 버는 이야기나 돈을 우상처럼 섬기며 돈과 숫자를 더 좋아한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벌면 성공했다고 부러워하는 극도의 물욕에 편향된 말과 행동을 자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런 행동과 말을 보고 들으며 닮아간다. 아이 친구 부모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더 중시하고, 아이가 어디서 사는가에 더 관심을 갖는다. 아이들이 철이 들면 과연 이런 부모를 어떻게 생각할 지 자못 궁금한 생각이 든다.

뿌린 대로 거둔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 따라 자란다. 말과 생각의 힘은 놀랍다. 부모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자녀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진다. 언어의 힘은 생명이 있는 식물을 키우는 막강한 힘이 있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향하여 평소 늘 품고 있는 생각과 하는 말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스며들어 아이들의 꿈이 되고 동기가 되고 지향이 된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니까, 명심하여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말의 힘이요 생각의 힘이다.
좋은 말 착한 말 바른말 축복의 말 긍정의 말 칭찬의 말 희망의 말 격려의 말 용기의 말 온유한 말 배려의 말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을 살피는 말 등 부모의 말과 말하는 어투와 어조가 아이들을 키우는 자양분이다. 이런 밝은 상승의 말들은 그대로 우리 아이들의 언어습관을 형성하는 큰 벼리가 된다.
아이들의 언어습관을 만드는 가장 강한 힘은 부모의 세 치 혀에 달려있다. 부모의 세 치 혀가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셈이다. 자녀를 변화시키고 아이들을 이끄는 힘이 아주 작은 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만이 학원 보내는 것만이 아이들 교육이라고 아직도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보이지 않는 부모의 생각, 부모의 은밀한 마음과 생각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부모가 생각하는 대로 마음먹은 그대로 우리 아이들은 변한다. 부모의 자녀를 향한 정성과 쌓아 올린 공은 결코 헛되지 않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가 일궈놓은 정원의 그늘에서 자라는 화초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가정에서 아이들과 가족을 향한 생각과 마음은 도저히 감출 수 없다.
얼굴 표정이나 말투나 눈빛 영감, 오감으로 느끼는 감정과 마음에 일렁이는 오욕칠정의 탐심과 미움과 사랑의 마음은 공기처럼 서로에게 흘러가 스며든다.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향해 늘 고운 마음 선한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뿐이랴, 우리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부모의 행동이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불신을 키우고 만다. 말을 많이 하는 대신 보여주는 부모가 아이들의 신뢰를 얻는다. 아이들에게 은근한 감동을 준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그대로 따라서 한다.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은 다 수긍할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잘못된 것조차도 그대로 본받아 따라 한다. 부모보다 훨씬 더 강하게 부모의 나쁜 행동이나 습관을 가감 없이 습득하여 그 실력(?)을 발휘하고야 만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과 생각은 부모가 고스란히 투영된 그림자다. 물속의 그림자가 물 밖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그림자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면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그 부모의 언행과 생각과 태도와 가치관과 사는 모습까지도 거의 다 꿰뚫어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와 간절함이 있을 것인데, 부모가 먼저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면 반드시 그 바람과 기대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부모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의해 우리 아이들의 인생은 구축된다. 이 세 가지 축대 위에서 한 아이의 인생의 하부구조는 세워진다. 다시 말하여 무엇하랴. 내 아이의 삶과 인생은 부모에 의해 좌우된다. 부모의 경제력 학력 지위 지식 신분이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고 성장시켜주지 않는다.
자칫하면 부모의 풍족한 이런 외형의 조건들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을 망치는 치명적인 아픔이 되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고산준령 혹한의 폭설과 강풍이 명품 바이올린을 만드는 주목을 키운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겪는 시련과 고통과 인내와 기다림은 탄력 있는 튼실한 아이로 만드는 필수 자양분이다. 아이들은 잦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스스로의 길을 터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부모들이 문재다! 자주 넘어질 때마다 혼자 일어나면서 넘어지지 않는 법과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요령까지 터득해야 하는데, 부모들이 이를 참아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안목과 철학을 갖게 되는 길은 자기만의 잠잠한 체험에서 비롯한다.
청옥의 고려상감청자 도예품은 수 천도의 고온에서 담금질을 거쳐 명품 진가의 명성을 얻는다. 칼이나 쇠스랑이나 낫과 같은 연장도 대장장이의 수많은 절차탁마의 과정과 풀무 속 고열의 담금질을 통과하여야 단단한 기구가 될 수 있다. 고난과 가난과 아픔을 참고 견디며 기다릴 줄 아는 아이들이 자기만의 건강한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길, 자신만의 집을 꿈꾼다.

우리 아이들과 어려서부터 서점이나 도서관을 자주 방문하여 책과 친숙해질 수 있는 체험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우리 아이들이 산을 오르며 부모와 대화하고 교감하는 시간을, 산을 느끼고 산의 큰 가슴을 스스로 체험하기를 자주 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책을 읽으려면 오랜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선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려는 성급함은 도저히 우리 아이들에게 책 읽는 인내와 기다림을 허용하지 않는다. 깊고 먼 책의 숲길을 혼자 걸으면서 미궁을 헤매보고, 책 속에 담긴 저자의 생각과 글의 밑바닥에 흐르는 사상과 뜻을 아이 스스로 탐색해 보아야 진정한 독서를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는 요원한 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는 일은 어쩌면 고된 수행의 길이요, 아이들의 인내와 기다림을 요구하는 고도의 연단과 수련의 험난한 길인지 모른다. 그러니 누가 책을 읽겠는가, 점수 잘 받을 수 있는 학원을 보내면 그만인데, 점수만 잘 받아 좋은 대학만 가면 그만인데, 결과만 좋으면 성공한 것인데...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향기를 풍기는 사람으로 사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지정의知情意를 고루 갖춘 따뜻한 가슴과 눈물을 간직한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거나 책을 읽지 못하는, 문해력이 거의 없는 아이들을 탓하지 않는다. 귀한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이 사회의 삐뚤어진 욕망이 자초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요즘 아이들을 병들게 한 책임이 있다면 무조건 진정한 교육의 부재 탓이다. 그리고 부모의 과잉 욕망이다. 지정의知情意를 고루 갖추고 따뜻한 가슴을 품은 아이들로 잘 성장하지 못한 것은 부모의 과도학 탐욕과 병든 이사회의 풍조 때문이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물질적 탐욕만을 채우려는 물신주의는 우리 아이들과 교육환경과 우리 사회 전체를 어둡게 바꿔 놓아 버렸다. 이 위험한 흐름을 탄식한들 무엇하랴, 아파한들 무슨 소용이랴, 하루아침에 초래한 결과가 아니다. 사고와 행동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르네상스적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병들어가고 있다. 지금, 이 땅의 숭고한 우리 아이들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병들어 고사하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힘을 키워내야 한다. 자기 상승의 힘을, 자기 초월의 힘을, 자기 변화의 힘을 스스로 확장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알에서 깨어난 부활의 새가 되는 꿈을 꾸어야 한다. 어두운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 알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은 우리 아이들을 억압하는 고질적인 기성세대의 완고한 사고와 부모의 낡은 욕망으로 이루어진 감옥이다. 알은 질문과 호기심과 상상의 문을 거부한 세계이다. 알을 깨부수고 큰 우주를 향해 한 마리 고독한 새가 되어 비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인내심과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을 키워내야 한다. 자기 상승의 힘, 자화력, 자기 초월의 힘을 자기 부활의 힘을 자기 변신과 변화의 힘을 자기 창조 자기 긍정의 힘을 자기 안에 잠재해 있는 고유한 힘을 스스로 발산할 줄 알아야 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새의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

이런 역동의 삶을 사는 우리 아이들로 키우는 그 출발은 부모다. 부모의 큰 생각(마음)과 정직한 말(언어)과 행동이 강한 잠재력을 가진 큰 아이로 내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 부모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소중한 자양분이다. 부모는 큰 뜻, 큰 가슴, 큰 포부를 품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내 아이를 큰 아이로 키우려면 먼저 부모가 큰 뜻 큰 꿈 큰 포부 따뜻한 가슴을 품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책을 읽고 부모가 먼저 나의 아이가 갈 길을 알아야 한다. 부모가 따뜻한 가슴을 품고 어디서나 가난한 이웃들에 눈물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 학원만 보내지 말고 고귀한 나의 아이들에게 세상 좋은 것을 많이 보여줘야 한다. 교육이나 인생은 과정이다, 인생이 한걸음 한걸음 징검다리를 건너는 과정이듯이 결코 결과가 아니다! 인생은 성공(?)에 있지 않다, 세상은 실패한 성공자가 얼마나 많은가,

영혼과 감정을 가진 <식물의 정신세계>! (tistory.com)
(20230630,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