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1번을 반복해서 들으면 더 좋을 친구 하나,
내 마음 머무는 산, 내 마음 아늑히 안길 수 있는 산 하나!
내 마음이 가장 머물고 싶은 곳, 내 마음이 맨 먼저 부르는 이름, 내 마음이 가장 보고 싶은 얼굴, 내 안에 그리운 섬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할지라도, 세속의 일상이 아무리 바쁘고 그 결박에서 풀려날 수 없을지라도, 아무 때나 마음이 달려가 머물고 싶은 곳, 마음이 지향하는 곳, 무심히 가고 싶은 곳, 아늑한 곳,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곳, 금세 세상을 잊고 무아지경에 젖어들 수 있는 곳, 침잠하는 고요가 흐르는 맑은 물 부드러운 너럭바위, 깊고 높은 산의 완만한 능선과 고봉준령 기암절애와 금강송을 흔들어 염결의 뜻을 일깨우는 폭포의 울림, 무엇보다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들처럼 노닐 수 있는 곳, 호젓이 꽃처럼 피었을 수 있는 곳,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종일 만나서 놀아도, 아무 말이 없이 우두커니 있어도 부담이 없는 사람, 비 오는 날이거나 낙엽 지는 해거름 빗소리 들으며 낙엽 날리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차가운 소주를 두어 잔 할 수 있는 사람, 스페인 풍의 안심 스테이크 요리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사람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은은한 커피향이 흐르는 오두막, 솔잎향이 밴 스산한 솔바람이 불어올 때, 적멸보궁 가는 길 초입 상원사 찻집에 앉아 말없이 함께 있어도 좋을 친구가 있으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1번 사이를 반복해서 들으면 더 좋을 친구, 무작정 일상의 틀을 벗어나, 감동이 사라진 건조한 기계의 소음이 흐르는 쳇바퀴의 일상을 벗어나, 나의 마음이 일탈을 꿈꾸며 어디론가 지향하고 싶을 때, 내 마음이 가장 머물고 싶은 곳에 닿아, 내 마음이 맨 먼저 부르는 이름, 내 마음이 가장 보고 싶은 얼굴, 내 안에 그리운 섬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사람 하나 있으면, 내 안에서 그리워 불러보는 그리운 섬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 하나, 단 한 사람의 의미와 가치를 이제야 갈앙하며 늦은 세월의 강가를 걷고 싶을 때, 그 세월의 가을 산등성이에 올라앉아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바라볼 때, (나는 서해의 저녁놀 타는 바다를 보러 석모도를 자주 간다.) 이내 곧 아름다운 것들, 내 온 맘에 가득한 붉은 노을 같은 갈망들 다 사라진 검은 밤은 오고야 말텐데... 홀로 서야 하는 인생의 가을이, 홀로 골방에서 놀아야 하는 인생의 겨울도 곧 따라올 텐데... 내 안에는 누가 있어 가을이 저물어가는 산길로 나를 간절히 부르고 있는 것일까, 누구의 숨결이 나를 부추길까요, 내 안에서 나를 부르는 섬 하나, 산 하나, 내 안에서 내가 부르는 섬 하나, 산 하나, 오늘도 그리며 기다리며 호젓이 하루를 건넌다.
나는 그래도 좋다. 나는 홀로 즐기는 일에 꽤 익숙하니까, 북카페에서 하루종일 놀 수도 있고, 하루종일 송파도서관에서 고전에 젖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할지라도 단 한 사람이 그립다. 내 안의 단 한 사람과 시간 가는 것을 잊고 얘기하고 싶을 때가 밀려오면 갑자기 나는 외롭다. 고독한 시인이 된다. 내 안의 섬이 된다.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아무도 불러주는 이 없는 섬이 되어 망망한 바다에 떠 흔들리고 있다.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섬 하나, 그곳이 나의 마음 머문 자리다. 나의 섬이다. 나의 산이다.
그리할지라도, 나는 내 마음 지향하는 곳이 있으니, 허허한 마음에 산의 향기 와닿을 때면 나 혼자 산이 부르는 곳으로 달려갈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정말 영혼이 자유하다. 훨훨 나비처럼 날 수 있으니, 그윽한 산의 소리 새의 노래 들을 수 있으니, 물빛 물의 마음 비춰보며 온종일 물가에 앉아있을 수 있으니, 나는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설악이 부를 때면 설악을 가고, 지리산이 부를 때면 지리산을 내 마음 닿는 대로 자유로이 혼자 다녀올 수 있으니, 나는 아직 괜찮다. 아득한 시혼이 나를 깨울 때, 고전의 향기가 나를 유혹할 때, 지금은 그래도 내 마음 지향하는 곳이 있으니, 나는 아주 좋은 것일까,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일까, 결코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결코 잃지 않고 싶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오래오래 누리고 싶은, 나의 보람 나의 여백 나의 자유 민달팽이의 미음완보微吟緩步의 길,
오늘도 나는 그 좋은 곳에서 그 좋은 때를 즐기며 살고 있다. 설악의 품에서 낙원을 천국을 살고 있다. 낙원이나 천국은 살아서도 누릴 수 있다고 나는 늘 믿고 사는 사람이니까, 마음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세계이니까, 인생의 낙원이나 행복(?)은 누리는 자의 세계라고 나는 확신하니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지금, 이 순간순간의 길, 그 길 위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어제 그제 오후 불현듯 금강송 갈참나무 무성한 설악의 숲이, 설악의 물소리와 스산한 가을이 부르는 소리, 마음에 있어 단숨에 달려왔다.
민달팽이처럼 구불구불 느리게 느리게 걸을 수 있는 산길 숲 그늘 물소리, 새들이 벌써 다 떠났거나 이미 잠든 숲의 고요와 가을 무성한 그림자, 먼 하늘 등고선과 하늘 흰구름 솔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가을 햇살, 숱한 발자취의 흔적이 밴 하얗고 정갈한 산길, 비룡폭포와 토왕성폭포와 울산바위를 가볍게 만나고 돌아와, 날이 새면 떠나야 할 깊고 긴 산행을 기다리며, 속이 편안한 밤이면 고전을 만나고 경전을 외우고, 시혼이 오면 시를 쓰고, 그냥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면서 자족하면서 천국을 낙원을 살아보는 것이다. 그려보는 것이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분의 말씀대로 어린 아가처럼 단순하게 맑게 여리게 나를 다독이며,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다 맡기고 마음의 근심 걱정은 죄를 짓는 일이니까, 말씀대로 말씀을 행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오늘도 천국을 살아보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나를 기다리는 나의 샹그릴라를...
그렇게 살아지더이다. 새벽 산의 숨결을 심호흡하면서 흉금을 열고 산을 들이는 것이다. 내 마음 머물 곳, 내 마음 아늑히 안길 수 있는 산 하나, 섬 하나, 큰 산의 품 큰 산의 가슴에 닿을 때까지 걸어보는 것이다. 결국 나의 마음속에 산이 벌써 나를 기다리고 있더이다.
(솔물새꽃의 설악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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