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고신얼자, 알프레드 아들러와 맹자를 생각하며 희망을 건져 올린다!
무명의 비평가에게 시에 관한 해설을 써달라는 청을 받고 보니 진땀이 난다.
차라리 얼토당토않은 일을 당하고 보니 이판사판 맘이 되레 자유롭다.
뭘 어떻게 써볼까, 망설이며 끙끙거리며 노심초사하는데, 갑자기 고신얼자孤臣孼子라는 말이 생각난다.
고신얼자孤臣孼子, 젊은 날 때 아닌 시절에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며 한문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고신얼자孤臣孼子, 망망대해 창해일속滄海一粟에 불과한 나에게 글을 부탁한 벗을 생각 하니
차라리 눈물이 난다.
바로 그때다, 바로 그때 나도 모르는 새 힘이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바짝 든다.
오묘한 빛의 영감이 환하게 나를 비춰주는 것 같은 기운을 느낀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예까지 이끌었던 힘이 열등감이 아니었을까,
나를 견인한 힘이 내 안에 있는 고신얼자의 그 힘이 아니었을까,
고신얼자孤臣孼子!
임금에게 외면당한 외로운(孤) 신하(臣)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서자(孼)로 태어난 자식(子)이란 뜻인데,
시련과 고난과 차별과 버림 가운데서 인생의 험한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한 자가
누구보다 더 큰 더 깊은 더 넓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자성어이다.
고신얼자, 이들은 얼마나 절실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였을까,
'고신孤臣'은 임금의 총애를 받지 못하고 소외당한 신하,
'얼자孼子'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서자로 태어난 자,
이들이 처한 운명적 관계의 악조건이 오히려 이들을 단련한 힘이 되고
인고의 노력을 쏟게 한 촉매로 작용하여
결국 천하에 천한 '고신'과 '얼자'를 다른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맹자의 <맹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孤臣孼子고신얼자 : 외로운 신하와 서자로 태어난 사람은
其操心也危기조심야위 : 그들의 마음가짐이 남달리 절실할 수밖에 없고
其慮患也深기려환야심 :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다
故達고달 :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근래 알프레드 아들러의 '교육을 말하다' 를 읽는데,
열등감, 열등감이 나쁜 줄로만 알았는데, 아들러는 열등감이야말로 잘만 활용하면 한 개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폭발적인 모멘텀이 된다는 것이다.
열등감, 얼마나 절실한 자기 충족의 가슴인가, 열등감이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나라는 존재의 근원에 닿은 느낌이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설도 있지 않았던가, 열등감이란 모든 개인에게 잠재해 있는 성정인데,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인한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자기완성을 위한 필수 요인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개념인 '열등감'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프로이트 이후 큰 심리학자이다. 그는 이 열등감이라는 성정이 인간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어서 이상적인 자신을 지향한 분투적인 노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고 긍정적인 개인의 심리적 성향을 입증한 아들러였다.
고신얼자와 열등감, 맹자와 아들러, 한 인간의 성장과 상승의 힘은 결국 넉넉한 조건 하에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결핍과 고통과 역경과 소외와 아픔 가운데서 분출하는 창조적 힘이라는 것을 이미 맹자와 아들러는 궁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 속 많은 위인을 봐도 열등감과 고신얼자의 아픔이 얼마나 큰 상승의 힘이 되는가를 얼마든지 알만 한 일이다.
열등감의 힘과 고신얼자의 긍정적 아픔을 믿고 싶다, 열등감을 품은 인간과 고신얼자의 아픔은 결국 인간의 자기 극복과 자기 상승의 모멘텀인 것이 확실하다,
열등감과 고신얼자의 소외와 고통이 한 인간을 끌어올리는 힘이다. 열등감을 수줍어하지 말자, 차라리 열등감을 모르고 정체停滯된 인생을 살아온 나를 눈물로 다독여보자! 지금이라도 잠든 '나'를 깨우는 거인이 되어보자, 열등감과 고신얼자를 사랑하자!
20230609, 솔물새꽃의 모슬포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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