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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레테의 강을 건너버린 가을, 가을은 우주의 나그네!

by 솔물새꽃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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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멍든 온 몸의 가을의 흔적! 담쟁이덩굴이 가을이면 나의 진객이다.
저 멍든 온 몸의 가을의 흔적! 담쟁이덩굴이 가을이면 나의 진객이다.

우리는 레테의 강을 건너버린 노을 물든 가을 속 존재, 가을은 우주의 나그네다. 담쟁이덩굴과 선홍빛 애기단풍과 라일락의 피멍 든 단풍은 내가 기다리는 늦가을 진객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금동산을 산책하고 돌아와 오금카페에서 카페라테를 음미하며 쉼을 즐기는 오후 일과를 나의 몸이 벌써 알고 때 되면 나가자고 재촉한다.

 

참으로 몸은 정직하다. 몸은 내 영혼의 아늑한 평정을 위해 묵묵히 충직하게 늘 헌신한다. 몸의 고마움을 간과하고 몸에게 다소 무심했던 지난날들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이젠 몸을 가장 귀한 보배로 생각하리라!’

 

마음은 간혹 잔꾀도 부리고 마음에 탐심이 슬며시 동하면 몸을 유혹하여 죄를 짓기도 하며 몸을 혹사하여 심한 질병의 고통에 빠뜨리기도 하는데, 몸은 한결같이 우직하다. 바위처럼 산의 능선처럼 나의 생애를 지탱해 준 나의 몸. 나의 영혼을 위해 꿈들을 위해 작은 주인의 생애를 위해 잠시도 쉴 틈 없이 늘 새 힘으로 일어나 하루의 고된 이끌어준 나의 몸. 나의 남은 날은 몸을 더욱 아끼고 고이 안아주곤 하리라. 이젠 몸에게도 아늑한 쉼을 베풀리라.

 

하롱하롱 수직의 파문을 지으며 낙하하는 노란 은행잎 느티나무 벚나무 상수리나무의 수척한 낙엽들을 보면 외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떠날 때를 인정하고 집착과 소욕의 근골을 다 버린 무욕의 저 가벼움, 저 비움, 옹졸하고 쩨쩨한 나에게 가을이 늘 감탄과 탄성의 길인 것은 이런 까닭이다.

 

완악하게 버티고 있는 내 안의 빼곡한 불안 염려 근심 원망 불평 판단 오만 분노 의심 교만 죄의식 미움과 비판의 어두운 죄악의 깊은 숲, 그리고 뿌리 깊은 나쁜 언어습관, 부정적 생각이나 말, 태도, 무심코 행하는 행동들, 이것들로 인해 나의 인생은 얼마나 아파하며 비틀거리며 눈물로 탄식하며 걸어왔던가.

 

저 낙엽들처럼 철이 들어 절로 비우고 버리고 다 체념하고 길 떠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새로이 다시 봄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우리는 더 이상 지나간 봄으로 여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레테의 강을 건너버린 노을 물든 가을 속 존재이다.

 

한가로이 가벼이 먼 망각의 섬으로 가는 가을의 울긋불긋한 심상들, 다양한 감각을 통해 잠든 영혼에게 신비하고 놀라운 자연의 섭리를 일깨워주는 저 신실한 가을의 형상들, 단풍 물든 낙엽은 우주의 숨결이요 무위의 춤이요 조물주가 공들여 빚은 시의 음절이다. 신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우주의 잠언이다. 가을의 흐름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이다.

 

수많은 행성 가운데 지구별이라는 아주 작은 그러나 신비한 생명이 꽃 피고 지는 한 점 섬에서 만난 우리, 우리가 찰나의 순간을 이 지구별 나그네로 함께 머물다, 구원의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벅찬 감동이요, 감당할 수 없는 행운이요, 기적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과분한 축복을 누린 자이다. 기적을 경험한 자로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또 무엇이 있으랴,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