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장자> 내편 '소요유' 를 읽고 생각하다. 앎은 행함이다. 행함이 없는 앎은 오히려 영혼을 타락시킨다. 앎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는 대로 살 줄 모르는 것이 문제다.
그대여, 잘 놀다가 가시게, 인생은 놀다 가는 길이라네..! 물처럼, 새처럼 살아보세!
나의 옛 벗들에게서는 맑은 물소리, 청아한 새소리가 들린다. 환한 들꽃의 미소와 순결한 벗들의 본래 마음이 명경(明鏡)에 비치듯 그들의 마음에 어른거린다. 그 곱고 순한 얼굴들이 이제 점점 더 자주 그리워질 때가 있다. 특히 어스름 산 그림자를 밟아 산길을 내려올 때면, 한강 너머 저녁노을이 야로의 불길처럼 타오를 때면, 나의 가슴에 파도처럼 울먹이는 노래들, 소슬바람 불어오는 가을이면 더욱 이름과 얼굴이 점점이 가슴에 글썽인다.
산 너머 바다를 막연히 동경했던 시절, 흰구름 떠 흐르는 언덕에 올라 아늑한 하늘을 배회하며 해 지는 줄도 잊고 강을 바라봤던 어린 시절, 나의 생애 가장 순수했던 학창 시절, 햇살 좋은 창가에 서서 자운영 꽃피는 들판을 보며 봄을 노래할 때가 엊그제였는데, 주작과 덕룡산의 긴 그림자 운동장에 어린 날이면 우리는 청운의 꿈을 품은 가슴으로 다짐하고 다짐하며 학교를 나섰다. 구불구불한 석문의 돌길, 기암절벽 석문산의 세찬 겨울바람을 헤치며 꿈을 키우고 키를 키웠던 우리가 벌써 노을 타는 그리움을 안고 이른 가을의 강을 건너고 있다니, 이게 인생일까, 이게 우리가 모르고 살아온 인생일까, 오늘도 무심히 흐르는 생애의 강, 그리움이 꽃 피어나는 아늑한 세월의 강, 그 강가를 오늘은 마냥 걷고 싶다, 남포 마을 지나 구강포 바다가 열리는 곳까지...
한 세상 그림자처럼 잠시 머물다가 곧 떠나면 영영 이별일 것인데, 뭣 때문에 무겁게 무겁게 한숨 토해내며 백 년도 못 살면서 천년의 근심까지 이 세상 오만 걱정 다 안고 사는지 몰라, 웃을 줄도 모르고 살짝이 덕담 한마디 건넬 줄도 모르고, 친구의 자랑스러운 경사에 칭찬, 축하의 마음 한 자락 전할 줄도 모르고, 마음 문 꼭 닫은 소인배로 인색하고 모질게 살아가려 애쓰는지 몰라, 뭣 땜시 시기심 질투심 복수심 가득 품고 그대 자신을 괴롭히며 사려하는가, 마음을 잘 다스리세! 마음을 공평하게 잘 다스리며 사세! 나잇값을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세 치 혀 두었다가 어디 쓰렸는가! 스스로를 죽이는 데 쓰지 말고 나와 이웃을 살리는 데 쓰세! 세 치 혀로 하는 말이 세상을 살리는 힘이네!
먼저 친구들 이름 불러주고 벗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해 주며 벗이 슬퍼할 때 눈물 훔쳐주고 서로 먼저 칭찬해 주고 서로 먼저 축하해 주고 서로 먼저 격려해 주고 서로 먼저 위로해 주고 만날 때마다 덕담해 주는 길이 돈 들이지 않고 세 치 혀로 입으로 쌓아가는 성덕(成德)의 길이 아니겠는가. 친구들 만날 때마다 막걸리라도 한잔 먼저 사는 일이 적선(積善)하는 길이요, 공덕을 베푸는 해인(海印)의 마음이 아닐까. 학교 수학은 어려워도 인생의 방정식은 알고 보면 어려운 것 하나도 없는 것 같다네, 까짓것!
까짓것! 잘 놀다가 가시게. 인생은 놀다 가는 길이라네. 인간을 가장 사랑한 철학자 장자는 <장자> 내편 첫 장에 ‘소요유’에서 소요유 하자고 하네. 이제 그만 쉬고 노닐자는 거네, 한가히 노래하며 놀다 가자는 말일세. 소풍 가는 날처럼 살라는 말이네.
부자가 되고 성공하려면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도 부족하다는 세상인데 이제 그만 쉬고 노닐자고 하네. 노는 마음은 욕심, 소욕(所慾)을 줄이고 비우는 일이라네. 욕심이 없어야, 나의 소욕을 비워야, 나를 내려놓아야, 노닐 수 있다는 것이네. 일 그만하고 욕심 그만 부리고 굶어 죽을 일 아니면 인생을 노닐며 살게. 어린 시절 소풍 갈 때 얼마나 즐겁고 마음 넉넉하였던가. 세상 욕심 다 버리고 살게. 욕심 때문에 못 놀며 사는 것이라네. 내 안에 가득한 욕심의 무게로 비틀거리며 인생길 팍팍하게 가는 것이라네. 자식들한테 물려줄 탐심 때문에 못 놀다가 후회하며 죽는 것이라네. 욕심 때문에 평생 일만 하는 것이라네. 일만 하려고 태어난 인생이란 말인가? 딱 한 번뿐인 유일한 인생을 이제는 살아보게. 참 인생의 길을 살아가게. 나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유일한 인생을 살아보게.
조용히 혼자서 주작이나 덕룡산 산등성이에 올라 자네의 남은 인생길, 자네가 가야 할 그 길, 그 막다른 종착역을 한 번 굽어 바라보게. 그 끝이 훤하게 보일 때까지 덕룡산 영봉에 앉아 살아온 길과 살아갈 남은 길을 바라보게. 틀림없이 투명하게 다 보일 것이네. 그 끝은 영원한 하직, 죽음이네. 죽음 다음은 무엇일까, 두려운가... 아니네, 장자는 죽음은 삶의 연장이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말하네. 삶의 무게를 초월하고 죽음까지 즐거워하며 사는 인생, 이것이 소요유(逍遙遊)의 삶이라네.
그래서 새가 되어, 대붕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보자고 하데, 이 세상이 하찮은 좁쌀만도 못한 아주 사소한 한 점이라고 하데. 그런데 우리는 이 사소하고 쩨쩨한 세상사에 얽매여 몸 둘 바를 모르고 바삐 일만 하고 살아가는 것이네. 이름을 위하여 살고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무겁게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네. 그래서 장자는 말하데. 이름을 위해 살지 말라 하네, 담 없는 마을에서, 경계 없는 무위자연의 세계에서 자유로이 살자고 하네. 이 길이 즐겁게 노니는 삶이라고 말하네.
인생 막다른 길목에 다 와서 탄식하지 말고, 죽을 때 서러워 말고, 지금, 지금, 지금, 여기서, 여기서, 자네의 인생을, 한 번뿐인 자네의 인생을 살아보게. 그 인생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일만 하는 게 인생이 아니라네. 남을 미워하고 남을 원망하고 탓하지 말게. 나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누굴 일 것 같은가? 나에게 가장 고통을 전가하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은가? 바로 나 자신이네. 바로 내가 나를 가장 학대하고 나를 가장 미워하고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전가하며 살고 있는 것이네. 너무 자기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고 너무 잔혹하게 무거운 짐 맡기지 말게.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죽음의 순간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런 철학적 질문을 자주 하면서 살아보게. 이 길이 노니는 삶, '소요유'라네. 남은 길은 자네의 참 인생을 살아보게. 대붕처럼 하늘 높이 날아보게.
(20230216,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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