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COSMOS, 보이지 않는 우주를 꿈꾸는 일은 틀림없이 존재의 근원과 아름다움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상상의 문에 닿는 길이라고 믿는다.
"일상의 빵을 위해 싸우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걸 입증한 유일한 시인!"
알베르 카뮈가 프랑스 현대시인을 대표하는 르네 샤르 시인에 보낸 서간문에서 한 말이다.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는 약 13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다.
프랑스 두 거장의 서간문을 읽어보면(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 소설과 시, 문학 장르를 초월하여
한 인간과 인간의 만남과 우정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가를 잘 보여준다.
두 예술가의 만남은 거대한 두 세계가 만나는 것과 같다.
“르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내 안에 깃든 빈자리가 오직 당신의 글을 읽을 때 채워집니다.”
(카뮈가 르네 샤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이고, 르네 샤르는 프랑스 현대시인을 대표하는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순수함과 예지와 명철은 물빛이다.
그렇다, 인간의 두 눈으로,
우리의 두 눈으로 생생하게 COSMOS우주를,
영원을 꿈꾼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 정말 벅찬 감동이다!
그래서 인간의 위대함은 찬란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 찬란한 위대함으로 지구별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공평한 존재로 사랑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찬란한 인간으로 사는 동안 이 우주 위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 하리라,
찬연히 오래오래 빛날 자취를 이 지구 대지 위에 남겨야 하리라,
일상의 빵을 위해 싸우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걸 증거 하는 시인으로...!
상상의 문을 열고 초월의 벽을 넘어야 하리라,
우리의 작은 눈으로
아득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는가,
수백 광년 북극성까지의 먼 길을
수천 광년 저 너머에 있는 카시오페아의 반짝임을
수백만 광년 저 너머에 있는 은하계까지
그 거리를 잴 수야 없지만
그 거리를 알 수야 없지만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아득히 멀리 있는 것들을
상상하며 꿈꾸며 갈망하며 몸부림치며 바라보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닌가,
아주 작은 인간의 두 눈으로
하늘의 별을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꿈을 꾸지 않고도 날 밝은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늘 아래 사는 인간의 가장 고매한 기쁨이 아니랴,
그 별을 보는 눈으로 마음의 별을 보며 산다면
세상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것들을 동경하고 상상하며
마음의 눈을 뜨고 산다면 얼마나 세상은 신명이 날까, 별빛 찬란한 정원이 될까,
우리 마음은 별꽃의 향기와 다채로운 무늬 무성한
무한한 우주의 시공을 살게 될 것이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두 시와 그림은 우주적 상상의 안목이 빚은 아름다운 세계이다.
밤하늘 아득한 별에게 길을 물어 짧은 인생길 떠나는 나그네는
얼마나 행복한 여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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