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지용孔德之容
유황유홀唯恍唯惚
사람의 욕망으로만 북적거리는 도심은 이제 아예 자연自然이 없다.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진 자연의 동작이나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뿐이다.
소위 무위자연은 그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사람들이 입으로는 자연 자연 하지만
그 머릿속이나 가슴속 어디에도 자연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후변화(위기) 지방소멸 인구절벽 저출산 교육붕괴...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지구적인 낯설고 심히 두려운 난제와 징후들이
이 땅에 소멸해 가는 본래 ‘자연’과 어찌 무관하랴.
우리 안에 '자연'이 사라져버린 일과 어찌 상관없으랴.
우리가 산에 올랐다고 강이나 바다를 여행했다고
녹지를 조성해 국적 불명의 나무와 화초를 심는다고 해서
자연을 회복하고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왔다고 해서
동네 동산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해서
자연과 친밀해지고 자연의 품에 안겼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식물도감 속 꽃과 나무와 곤충과 새의 이름을 외우게 하는 일이
자연을 아는 일일까.
주말이면 건성으로 아니면 억지로 아이들 데리고
산이나 강가에 나가 숲의 바람을 쐬는 게 자연 친화적인 생활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자연이란 무엇일까? 과연 자연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안에는 과연 '자연'이 있는가!
(한번 조용히 물어보자...)
자연의 길이 사람의 길이요 사람의 길이 자연의 길일 것인데
자연의 길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맹목의 시대가 다 되고 말았다.
<노자>는 인간의 이욕利慾을 훌훌 벗어버리고 갓난애嬰兒가 되어보라고 호소한다.
어머니의 품 같은 자연에 안겨 아자연我自然이 되어보라 한다.
순결한 본래 자아를 회복하라 한다.
자연, 한결같은 크고 텅 빈 자연의 모습인 공덕지용孔德之容!
정말 우리 안에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유황유홀唯恍唯惚!
분명 본래 자연의 큰 마음이 우리 안에 있었다!
우리 안에 깊숙이 곳곳을 이미 점령하고 있는 욕망과 이기심, 탐심, 미움, 경쟁!
이것들을 다 털어내고 빈 그릇 같은 우리의 마음에
상생相生의 마음, 눈물과 사랑과 자연의 마음을
우리 안에 흐르게 하는 일이 '자연'을 회복하는 일이 아니랴!
‘공덕지용孔德之容 유황유홀唯恍唯惚’이란 말은
<노자> 14장, 21장을 읽다 보면 나오는 구절이다.
자연의 조화造化를 더할 바 없이 높여 공덕지용孔德之容이라 한다.
이때 공孔은 크면서大 텅 빈空 것이고,
노자나 장자의 덕德은 의당 자연自然이요 도道이며,
용容은 짓 동작 모습이라는 것이 되어
‘크고 텅 빈 덕德(=자연, 도)의 짓’이 공덕지용孔德之容이다.
산천의 새나 꽃이나 물이나 들풀이 행복한 것은
공덕孔德의 품 안을 보금자리 삼아 한 생을 절로 절로 누리는 까닭인데
나는 해마다 5월이면 이 땅의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과연 이 땅의 우리 어린아이들은 행복할까!
큰 자연(=공덕孔德)의 품에서 과연 살고 있을까!
아가, 오줌이 마렵거든 자갈밭에 누지 말고 풀밭에 가서
맹물만 먹고사는 풀한테 거름되게 적셔주고 가거라,
옛날 할아버지가 손자와 산천을 걸을 때 손자에게 베풀어주었던 가르침이다.
돌멩이 하나도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귀히 여기는 큰 마음이 공덕孔德(=자연)이 아니랴!
큰 뜻 큰 포부 큰 가슴을 품고 사는 것이 자연의 마음
공덕 孔德인 것이다.
산에 오른다고 강이나 바다를 떠돈다고
지리산이나 제주도의 둘레길을 걷는다고 자연을 회복하고 자연을 아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인간의 이욕利慾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린아이嬰兒로 돌아가는 일!
어머니의 품 같은 자연 속에서 순결한 자아를 회복하려 노력하는 일!
부모(인간)의 탐심에 의해 비뚤어지고 뒤틀리고 혼탁해진 본래 자연의 마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회복하는 일!
태어날 때의 천성을 되찾아주는 일!
이 일이 자연을 되찾는 일이 아니랴.
호연지기의 큰 뜻을 자연의 큰 길을 배워야 하리라.
큰 산 큰 강 큰 바다 이 땅 절로절로 살아가는 삼라만상을 보아라!
사람도 자연이요 자연의 한 지체일 터인데,
어쩌자고 인간은 자연을 다 버렸는가,
어찌하여 인간은 자연의 큰 마음 큰 뜻을 다 잃어버렸는가!
정말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유황유홀唯恍唯惚, 자연의 마음!
크고 작음도 높고 낮음도
선도 악도 없는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자연
황홀, 유황유홀!
우리의 본체요 본성이요 천품인 자연을 어쩌자고 우리는 다 잊어버리고 빼앗기고 말았는가.
자연의 공덕孔德을 다 내팽개치고 다 잃어버리고 말았는가.
우리 안에 깊숙이 잠입한 물질에 대한 탐욕과 아주 작은 이기심, 아주 사소한 미움, 경쟁을 훌훌 털어내고
숲의 마음, 새와 꽃의 마음, 나무와 물의 마음, 상생相生의 마음,
눈물과 아량과 '크고 텅 빈 자연의 마음'
공덕지용孔德之容
유황유홀唯恍唯惚
늘 흐르게 할 일이다!
20240509, 불암에 앉아서 솔물새꽃(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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