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운다 - 김삼규
여름여름 매미가 운다
엄마를 사랑한다고
할미를 사랑한다고
순이도 사랑하고
돌이도 사랑한다고
푸름푸름 매미가 운다
백구를 좋아한다고
송아지를 좋아한다고
대추나무도 좋아하고
단감나무도 좋아한다고
푸름푸름 여름여름
온 천지를 흐르는 매미의 노래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도랑도랑 도랑물 매미가 운다
<벗에게 – 매미에 관한 단상>
여보게, 깊은 밤에도 매미는 운다고 시끄럽게 밤잠을 훼방한다고 매미를 탓하지 말게 그대의 생각으로 매미를 함부로 단정하지 말게 매미의 노래를 성난 마음으로 들으면 소음이 될 것이고 청아한 마음으로 들으면 댓잎에 부서지는 가야금 산조도 될 것이네 매미의 노래를 듣는 우리네 마음을 고르게 씻어볼 일이네,
구원久遠한 생명의 순례길 영혼과 육신이 서로를 놓아주는 이 지상 마지막 이별이 올 때까지 온 힘 다해 여름여름 울고 가는 매미의 생애! 목숨의 숙연함은 얼마나 찬란한 별인가 주어진 천명天命에 순종하는 일이 자연의 길 아니던가, 천예天倪의 천성대로 사는 길이 옳고 그름의 경계를 버리는 일이 무위無爲의 길 가는 자연의 길이 아니던가, 잠시라도 저 산 너머 구름을 보고 구름 너머 하늘을 바라보게, 우리의 목숨의 근원은 어디란 말인가, 그리고 목숨의 끝은 또 어디란 말인가, 매미가 뜨겁게 살다 가는 여름 한 철이 우리네 인생의 은유적 형상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그대의 백과사전식 지식으로 매미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게 섣불리 이성理性의 힘에 의존하면 매미와 멀어지는 길이네 그렇게 무심하게 넘길 일 아니네 매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매미를 알아야 하네만 어찌 우리가 매미를 다 알 수 있으랴 그리할지라도 매미의 노래를 오래 들어봐야 매미에게 더 가까이 가봐야 매미가 잘 보일 것이네 장마가 그쳤다고 여름이 간다고 밤낮 울어울어 세상을 흔들어주는 매미의 심오한 무위의 울림!
매미 소리 희미하게 멀어지는 처서가 오면 무더운 여름이 간다고 무턱대고 좋아하지도 말게나 선선한 가을이 온다고 섣불리 좋아하지도 말게나 일촌광음 불가경, 일촌광음 불가경, 매암매암, 푸름푸름, 여름여름, 도랑도랑,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온 힘 다해 노래하는 매미의 열정! 잘은 몰라도 매미가 우는 소리 들으면 살신성인殺身成仁, 포기하지 않는 매미의 기다림과 간절한 갈망 같은 무엇인가가 잡힐듯 느껴진다네!
여보게, 매미를 인간사의 잇속으로 분별하려 말게나 매미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상념을 베풀어주는지 아는가 인간의 노래에만 귀 기울이지 말고 인간이 만든 소리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연의 섭리 오묘한 진실 보여주는 매미의 시와 매미의 노래를 더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게나 모차르트의 교양악 선율보다 깊은 해조諧調의 화음을 매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게나 매미 소리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한 계절도 벌써 다 가고 마는 것이네,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허송하지 말라.’ 중국 남송 주희(주자)의 ‘권학문’ 일절. 주자의 시 중에 '소년은 금방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못가에 돋은 풀들이 봄 꿈에서 깨기도 전에, 섬돌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 노래를 부르는구나(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를 읽으면, 마치 매미가 일촌광음불가경, 일촌광음불가경, 하고 우는 것만 같다^^
20230731,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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