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든
시든
산과 섬이든
오래
머물러 지긋이
봐야 해
가까이 가서
오래 보고 있으면
뭔가 보여
쏜살처럼
건성으로 지나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긴 인생길도 아마 그럴지 몰라,)
여백을
여유를
느림느림 갖는 것
여기서
이때라야
기쁨이
행복이 살짝이 다가와
서두르면
뭐든 남는 게 없어
마냥 허무해
누구하고 든
언제 어디서나
다시 만나게 돼
그때를 위해
좋은 인연으로
함께 살아야 해
인생은
자랑할 게 별로 없어
자랑하려 하면 피곤해져
그냥 있는 대로
그냥 안분지족
그냥 사는 거야
일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인간적 존재로서의 길을 가보려
노력하는 거야
생명에 대한 외경과 우주적 존재의 일회성, 순간성도 가끔 한 번씩 생각해 보면서
인간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본질에 더 다가가고 싶으면
산문山門을 자주 들어서 봐,
山門에 들어서 산의 숨결을 꼭 느껴봐,
山
산의 품에 안겨봐!
산은 영혼의 안식이야
산은 참으로 놀라운 세계야
산은 항상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
산의 위의威儀를 자주 예찬하였지,
그리고 클래식과 시와 고전을 가까이해봐
웬만하면 뉴스나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멀리해 봐
(마음의 평정을 해치는 가장 독성이 강한 문명 바이러스이지)
목마른 영혼의 갈앙을 적셔주는 신앙생활은 꼭 필수야!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니까...
산문에 들면 느림느림 느린 민달팽이가 되어보고,
섬에 들면 미음완보 우보천리 하듯 고독한 나그네가 되어보고,
(신안 섬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한번 거닐어봐,
하늘과 바다와 섬과 나의 존재에 대해, 본질에 대해 무슨 질문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면서
그냥, 그냥, 한없이 걸어봐, 하늘과 바다와 섬과 사람이 경계가 없는 무하유지향의 섬을...)
다문다문 쉼의 틈 여백 여유를 만들어도 보고,
물소리 좋은 곳 삽상한 바람의 길목을 만나면
숲 그늘 너럭바위에 느긋하게 게으름 피우며 앉아
청신한 계곡 그늘에 앉았다 누웠다 번갈아 하늘 보며 망중한을 보내봐,
물소리 새소리 함박꽃 사각거리는 함박웃음 들으며
담아 온 냉커피를 천불동 가는 길 비선대 너럭바위 그늘에 앉아 마셔보는 일...
그 커피 맛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산문에 들어 누릴 수 있는 최고 여백의 미학, 느림느림의 발견!
(나는 이 시대 젊은 청년들이 산문에 들어 지친 영혼을 회복하여 돌아오길 늘 원한다. 설악산 천불동계곡이든 지리산 뱀사골이든 백무동 한신계곡을 천천히 느리게 민달팽이 걸음으로 걸어보길 꼭 권하고 싶다, 만학천봉 깊고 깊은 곳을 흐르는 바람과 물소리가 항상 있는 곳! 대청봉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 비선대 지나 양폭산장이든, 천당폭포든, 무너미고개 까지든, 신선대 까지든, 자신의 체력에 맞게 산의 숨결을 따라 호흡하며 몸맘을 꼭 비워 돌아오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새벽 일찍 길을 나서 천불동계곡을 다녀오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나의 영혼이 쉼을 누리는 일, 바로 나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이 시대 젊은 청년들을 보면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항상 안쓰럽다, 항상 애잔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쏜살같이 산꼭대기 정상 표비석만 생각하고 끙끙거리며 헐떡이며
산길만 맨땅만 쳐다보며 무겁게 오르기만 하면 산이 무슨 재미랍니까,
시간에 떠밀려 숨차게 건성으로 지나쳐버리면 산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山門에 드는 일은 산을 즐기는 일이요 산길을 걸어보는 일이지,
오감을 열어 산을 들이는 일이요 산과 해조諧調의 융일融一을 이루는 일이지,
천천히 서서히 느리게 싸목싸목 두리번거리며
호젓한 야생화의 영혼의 눈빛과도 눈맞춤 하고
목마른 절애고봉 바위틈에 목숨을 서린
금강송의 뿌리 깊은 생명애를 느껴보기도 하는 것
갈참나무와 잣나무 속 나이테의 연륜도 상상하며 더듬어보는 것
산문에 들어서 만끽할 수 있는 참 묘미이지요
산을 즐기듯이 인생도 즐겨봐!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광활한 시공이니까...
*비선대 너럭바위에 앉아 적은 엽서를 종이배 접어 이 세상 젊은 청년들과 나의 아들에게 띄워 보낸다.
20230704, 솔물새꽃의 설악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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