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Emile>를 다시 읽는다.
'에밀'을 통해 루소는 기다림과 선한 방목(放牧)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다.
그는 교육의 무용론을 주장하였다.
왜 그러하였을까, 지나친 인위적 교육이 되레 어린아이를 망친다고 믿었으니까,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에밀 Emile>은
'에밀'이라는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일종의 교육소설이다.
18세기 1762년에 출판한 교육학에 관한 고전이어서
<에밀>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나
루소의 교육적 사유와 고뇌에 대해서는 대부분 깊이 성찰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교단을 지키며 살아온 나는 다른 욕심(?)은 없을지언정
아이들에 대한 교육적 욕망(?)은 아주 각별하다.
학교든 가정이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열일 마다하지 않고 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는 일,
아이들의 자력(自力)을 키워주는 일,
자연과 교감하며 사는 일,
감성의 문을 열어 다양한 감각을 키워주는 일,
역사의식을 함양하는 일,
스스로 시대정신과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일, 에 온 열정을 쏟았다.
이 일을 도모하는 나의 길에 큰 암시와 동력을 제공해 준 책이 루소의 <에밀>이다.
이 좁은 지면을 통해 <에밀>에 관한 얘기를 다 하는 것은 장황한 일일 것이나,
여기서는 간단히 그 대략을 말하려 한다.
루소는 아동기(태어난 후 12세) 아이들에게
직접 손과 발과 눈과 귀(시각, 청각, 촉각)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세계를 인식하는 직관의 힘을 키우는 감각교육(감성교육),
지식이나 관념을 가르치기 위해 지적 사유를 유도하는 절제하는 교육,
아이들의 천품이나 잠재성이 절로 드러나도록 기다려주는 교육,
자연 속에서 자연성이 드러나도록 그냥 놀게 하는 자유로운 방목의 교육,
이 네 가지를 길러주는 일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하였다.
루소에 의하면 아이들의 양심이나 선행은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감성교육을 받으면 아이들 맘속에 양심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아동기 아이들 교육은 인지적인 지성이나 이성의 촉수를 자극하는 교육보다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교감하고 그곳에서 저절로 감각이 열리는
기다림과 선한 방목의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 250여 년 전 루소는 오늘날 이 나라 교육(?)을 예감하였을까,
자녀를 잘 교육하고 잘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그의 담론에 귀 기울여봐야 할 것 같다.
자연은 천편일률적인 우리의 교육환경과 전혀 딴판이다.
각기 다른 생명체들이 타고난 천성대로 살아가는 세계이다.
자연은 누구를 부러워하지도 않고 누구를 무시하거나 핀잔하지도 않는다.
각기 고유한 기질대로 살아가며 존재한다.
누구를 해치지도 않고 누구를 막무가내로 따라가지도 않는다.
결코, 뱁새는 황새를 따라 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뱁새는 뱁새의 자연성대로, 황새는 타고난 황새의 성정에 따라 살아간다.
참새는 참새대로 독수리는 독수리대로 살면 그만이다.
참새는 독수리가 되겠다고 과외받고 조기 외국어 교육을 전혀 하지 않는다.
서로 비교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능가하는 스펙을 쌓으려고도 않는다.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교육의 속성을 이제라도 잘 이해하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말의 함의를 오래전까지는 솔직히 잘 몰랐다.
루소의 이 경구를 들었을 때, 아무도 그 숨은 맥락을 짚어 말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 나는 <에밀>을 읽고 나서야 이 잠언 속에 담긴
루소의 ‘자연’ 교육에 대한 신념을 겨우 알 수 있었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개별 존재는 서로 다른 움벨트를 가졌다.
개별 존재의 고유한 움벨트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 개별적 차이를 무시한 일방적인 훈육과 교육은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을 해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분야에서 우리 아이가 조금 뒤처진다고 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의 발달에 맞춰 학습시켜주는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노라면 아이의 천부의 잠재능력이 절로 드러날 것이다.
기다림과 선한 방목放牧은 교육의 가장 큰 힘이다.
영혼과 감정을 가진 <식물의 정신세계>!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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