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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조지훈 시인의 '병에게'를 다시 읽다!

by 솔물새꽃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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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병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虛無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地獄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人生을 얘기해 보세 그려.

 

(조지훈의 <병에게> 전문인용)

 

질병으로 신음하는 모든 분들이 해사한 산수국으로 다시 꽃피어나길 기도합니다!
질병으로 신음하는 모든 분들이 해사한 산수국으로 다시 꽃피어나길 기도합니다!

윤선생! 내가 조지훈의 긴 시를 인용하여 윤 선생을 위로하고 쾌유를 비는 마음을 전하려 함을 조금만 기다려 읽어 내려가면 이해하실 줄 믿습니다. 병상에 누워계실 윤 선생께 낯선 시를 읽도록 하여 미안합니다

시인은 병에게라는 시에서 인격화한 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시인이 질병이라는 '자네'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참 눈물 나지요. 살아온 자신의 생애에 대한 성찰과 회개, 존재의 근원에 대한 통찰과 관조가 구구절절 묻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우리는 거울 앞에 선 초췌한 자신의 얼굴을 만나거나, 아니면 해거름 노을이 내린 강가를 거닐면서 아주 우연히 자신을 돌아보며 잊어버린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병마와 만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청천벽력 같은 충격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신의 현실 앞에서 극구 그 사실을 부인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 그 병마를 미워하거나 거부하려 할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기도 할 것이며, 급작스럽게 달라진 자신의 상황을 결코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러더군요, 내 몸 안에 질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절로 절로 사는 꽃처럼 살기를...!
자연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절로 절로 사는 꽃처럼 살기를...!

 

그러나 위의 시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생에 대한 좌절이나 체념보다는, 병마에 대한 거부와 증오보다는 관용과 너그러움으로, 반성과 뉘우침으로 자신을 진정하고, 그 병마와 친구처럼,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대화하면서 자신을 관조하며 성찰합니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잊고 지낸 친구처럼 그 병마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다가가려 합니다. 사실 알고보면 그 병마도 가 자초하여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나의 오랜 친구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직 먹고 사는 데 힘쓰느라, 정신없이 처자식 돌보며 먹고 사느라고 몸을 돌보지 못한 탓에 병마란 친구를 한번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장삼이사의 인생입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물리적으로 크고 작은 병마가 이미 우리의 혼과 육신에 들어와 살고있다고들 말합니다. 현대인 모두는 미래의 잠재적 환자인 셈이지요. 그러다가 여차하면,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여 건강을 돌보지 못하고 5, 60에 이르면 그 병마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맙니다. 어느 정도 인생의 능선을 넘어와 쉴만 하면 슬며시 찾아오는 질병...! 인생의 비극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요.

 

현대의학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우리 몸 안에는 900여 가지의 병인이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병마와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인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병마를 평소에 잘 다스리고, 또 그 병마와 잘 놀아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세상사는 일이 얼마나 분망한 나날입니까. 또 우리가 어리석기도 한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시인은 내 몸의 병마를 인정하고 진즉 몸의 이상을 알고 병마를 의식해 몸을 조심스럽게 관리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후회합니다. 다소 늦었지만, 병마가 몸 안에서 버럭 화를 내며 소리치는 그때서야 그 병마의 실체와 심각성을 인정하는 삶을 아쉬워합니다.

 

그렇습니다. 질병을 통해서 얻은 놀라운 깨달음은 이제, ‘를 사랑할 때가 된 것을 아는 일입니다. 이제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하고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할 때가 된 것을 병마를 통해 아는 것이 아닐까요. 그동안 꽉 붙들고 있었던 것들 하나하나 내려놓고 더 소중한 것, ‘를 붙잡을 때가 되었음을 통절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를 사랑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을 아는 것.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요, 헛되이 사라지는 것들이며, 도 영화도 권세도 덧없이 다 지나가고, 우리의 생까지도 지나가는 과정이지요, 영원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병마에 걸린 다음에 우리는 알게 됩니다.

 

아모르 파티&#44; 나의 운명을 사랑하라. 자연의 맥을 따라 그 흐름에 순응하며 사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
아모르 파티, 나의 운명을 사랑하라. 자연의 맥을 따라 그 흐름에 순응하며 사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

 

우리는 오직 순간, 순간을 살고 있을 뿐. 우리 인간이 천사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나의 한계와 몸을 소홀히 하며 살아온 날들을 투명하게 반성하고 생의 본질을 관조할 수 있는 그때가 되면 질병도 스스로 나를 떠날 것입니다. 생에 대한 집착에서 훌훌 벗어나 오직 나의 건강과 의 존재의 진실 앞에 숙연히 승복할 때. 그때면 이만하면 됐다.”하고 질병도 그 사람을 떠나고 말 것입니다. 질병을 잘 다스리는 일은 먼저 에게로 온전히 귀향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병마는 '나'에 대한 르네상적 전환을 하라는 반가운 신호인 셈이지요.

 

어쩌면 질병이라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긴 인생의 길목에서 필연코 한번은 만나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나의 운명을 사랑하라.” 지금의 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그렇게 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질병은 떠나고 벌써 본래의 건강한 가 되어 있음을 알 것입니다.

 

우리 몸은 늘 좋은 쪽으로 지향한다고 합니다. 신체와 정신의 불균형이 질병의 원인이라면 우리의 몸은 조화와 균형,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회귀하려는 본능적인 꿈틀거림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긍정의 말과 희망의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우리 몸은 반응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생각과 기대 섞인 긍정의 말을 늘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 지나가는 길... 기다리면 칠흑의 밤은 가고 새 날이 올 것을 믿는 믿음의 힘!
다 지나가는 길... 기다리면 칠흑의 밤은 가고 새 날이 올 것을 믿는 믿음의 힘!

 

조지훈 시인의 <병에게>처럼 윤 선생께서도 곧 좋아질 것입니다. 다시 건강한 몸으로 늘 밝게 웃으며 생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지금, 이 땅의 수많은 윤선생께도 이 글이 작은 위로와 발견의 계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20230611,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