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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굴레방다리연가', 아청 하늘을 그린다!

by 솔물새꽃 202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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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동산 언덕 먼발치에 서서 돌아볼 때면 더 잘 보이는 길, 오랜 북아현동의 아청 하늘이 늘 눈에 어린다!
가끔은 동산 언덕 먼발치에 서서 돌아볼 때면 더 잘 보이는 길, 오랜 북아현동의 아청 하늘이 늘 눈에 어린다!

그리운 것들은 어인 일로 나를 부르는 것일까, 이젠 다 사라져 버린 것들은 어쩌자고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의 길에서 늘 나를 오라 하는가, 

그립다! 그 길 그 얼굴들이 아스름하다. 옛 골목의 서성이는 망설임들이, 고가도로를 질주하는 늦은 귀갓길 그림자들이, 자꾸 살포시 노을 물든다. 내 생애의 길이요 강이었으니까, 지금은 다 없어진 것들을 그리며, 산산이 흩어져버린 이름들을 부르며, 전설이 되어버린 ‘굴레방다리 연가’를 긴 호흡으로 노래 불러본다. 인생의 향기는 추억의 꽃망울에 감춰진 먼 흰구름이니까. 그리움은 아득한 아청 하늘에 언뜻언뜻 미소짓는 사라져버린 별꽃이니까.

 

우수와 그리움이 사무치는 가을 창가에서 ‘굴레방다리 연가’를 적어본다!
우수와 그리움이 사무치는 가을 창가에서 굴레방다리 연가를 적어본다!

 

굴레방다리 연가 - 김삼규

 

도란도란 재잘재잘

물방울꽃 동그란 이야기 흐르는 골목을 걷는다

밤이면 유성이 자욱히 강물 흘렀던 길을 걷는다

명수우물 너럭바위에 앉아 있으면

샘물에 뜬 아청 하늘을 바라보는 길손의 젖은 눈빛이

굴레방다리를 건너오는 마포나루 뱃사공들의 노래가 보인다

 

애오개를 건너 아현고개 관문 굴레방다리는

마방馬房이 들어선 징검다리를 건너는

무명적삼 행인들의 훤화와

마구간 처마 밑 싸락눈 내리는 날이 늘 붐볐다

장이 서고 주막의 탁주향이 문전성시를 이룬 곳

여인네들의 의 젖가슴은 늘 풋풋했다

 

하늘이 좋은 날은 창을 열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하였다... 아득한 하늘 끝에서 얼핏얼핏 미소짓는 그리운 얼굴들이 보았기 때문...!
하늘이 좋은 날은 창을 열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하였다... 아득한 하늘 끝에서 얼핏얼핏 미소짓는 그리운 얼굴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굴레방다리의 연가는 별빛 반짝이는 마포나루로부터

샛터 연희별궁 봉원사 지나 안산까지 강처럼 흘렀다

춘삼월 매화꽃보다 먼저 봄을 사는 굴레방다리 사람들

매향천리, 인향만리, 세월유수, 

봄은 가고 다시 봄이 오고 가을이 오고

늘 그렇게 굴레방다리 연가는 하늘로 하늘로 날아 흩어졌다

 

옛 전설이 흐르는 은하의 강가를 건너면

깊은 밤의 신호등 앞에서 견우처럼 서러울 때도 있었다

고달픈 주막의 텁텁한 노랫소리

달빛 어린 굴레방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자정 넘어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초롱한 눈망울들이

비틀거리는 시간들이 오가는 분주한 거리를

아현 고개 넘어가는 길을 희미한 가로등이 지켜주고 있었다

가끔은 먼발치에서 돌아볼 일이다

길은, 다 지나온 길은 뒤돌아볼 때 더 잘 보이는 것을

 

이른 새벽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학교에 오면 인적없는 교정을 돌아보는 행운이 늘 내게 다가왔다. 남산(목멱산)의 가을 아침 노을은 처절한 절규처럼 치열하게 타올랐다!
이른 새벽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학교에 오면 인적없는 교정을 돌아보는 행운이 늘 내게 다가왔다. 남산(목멱산)의 가을 아침 노을은 처절한 절규처럼 치열하게 타올랐다!

 

동산 산등성이에 올라 먼발치에서 돌아보면

남산의 아침노을도 한강을 불어온 봄바람도

아득한 고향처럼 살풋했던 눈에 익은 얼굴들도 다 보인다

우뚝 선 고층 아파트 아래로 흐르는

굴레방다리 ㄹ자 골목들, 반듯한 ㅁ자 모양의 작은 대문들이

쭈뼛쭈뼛 손 흔들며 아침을 흘러가는 출근 행렬이

아직 잠깨지 않은 강아지의 혼들이 굴레방다리 위에서

헛헛하게 웃는다 헛헛하게 부른다 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 유행하던 시절 있었던가

시절마다 제 빛깔 선명한 동네였는데

가난한 사람들일지라도 가난을 모르는 부유한 사람들이었는데

쓸모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세상 물정 모르는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정말 쓸모있는 인정스러운 사람들이었는데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눈웃음들은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이젠 그 어디서도 기다릴 수 없는 세월의 길들을

 

이 교정이 있는 북아현동에서 36년의 긴 세월 짧은 인생을 보냈다, 교정의 아청 하늘은 가장 큰 보람이요 가장 큰 마음의 안식을 늘 나에게 베풀어주었다!
이 교정이 있는 북아현동에서 36년의 긴 세월 짧은 인생을 보냈다, 교정의 아청 하늘은 가장 큰 보람이요 가장 큰 마음의 안식을 늘 나에게 베풀어주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다오! 새집 줄게!”

 

이름만 있는 유명한 서울 시장이 되겠다는

좌우지간 욕망의 바벨탑을 세운 대통령만 되겠다는

눈에 보이는 번듯한 흔적만 남기겠다는

애드벌룬 같은 헛꿈을 날리며 선한 백성을 속이는 거짓 외침이

창을 흔들며 문틈으로 번번이 들려온 적도 있었다

그 광풍에 휘말려 변두리로 더 먼 변두리로 떠밀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북아현동 원주민들 착한 사람들은 다 쫓겨나고

이젠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찢어진 현수막만 빛바랜 탄식처럼 나부낀다

 

강남 같은 낙원을 만들어 준다고

오렌지족은 아니어도 낑깡족은 될 것이라고

잔뜩 겉바람 불어넣는 투기꾼들의 꾐에 빠져

그것이 일장춘몽 허장성세인 줄도 모르고

강남몽을 갈망하다가 물거품이 된 허망한 모래톱 이야기

옛 터전 다 빼앗기고 다 잃고 오갈 데 없이

의정부로 파주로 문산으로 떠도는 쫓겨난 북아현동 사람들 

굴레방다리의 아담한 얼굴들 착한 눈빛들

수십 년 눈에 익은 이웃들 골목들 연탄재 뿌려놓은 비탈길들

산산이 사방으로 다 흩어지고 말았으니 다 빼앗기고 말았으니

'개발'이란 말은 터무니없는 아픔이었다

 

*마방馬房 :마굿간을 갖춘 주막집

 

아청 하늘을 보면 지상의 결핍을 잊는다, 먼 데 꿈을 꾸고 살면 가까운데 있는 부족함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의 오랜 지혜!
아청 하늘을 보면 지상의 결핍을 잊는다, 먼 데 꿈을 꾸고 살면 가까운데 있는 부족함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의 오랜 지혜!
아청 하늘을 보면 지상의 결핍을 잊는다, 먼 데 꿈을 꾸고 살면 가까운데 있는 부족함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의 오랜 지혜...!

가끔은 먼발치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볼 일이다

길은, 이미 지나와 버린 길은 뒤돌아볼 때 더 잘 보이는 것을

 

복사골 산벚꽃 피는 정든 봄날도

북아현동 비탈길 명수우물에 비친 아청 하늘도

안산 인왕산을 넘어온 5월 아카시아 꽃냄새도

모두 다 빼앗기고 떠돌이 신세 되고 말았으니

돈 없고 빽이 없어 변방의 이방인 되고 말았으니

사람들 속에 사람은 많아도 사람의 얼굴을 한 자는 보이지 않으니

굴레방다리 발목 잠기는 비 오는 밤이면 멜없이 생각난다

 

대영당 서너 평 서점 민수 엄마의 수심이 보인다

백양 세탁소 젊은 새댁의 눈자위에 맺힌 한숨도 보인다

아이들 군입거리를 파는 분식점의 형설지공의 꿈도

뿌리 뽑힌 잡초처럼 버려진 껍데기다

 

눈 오는 새벽 비탈길 연탄재 뿌리던 장 씨 아저씨

골목마다 버린 화분들 모아

이렇게 버리면 하늘이 좋아하지 않는다, 고

지붕 옥상에 온갖 야생화 동산을 일군 김 씨 노인

배우지 못했어도 늘 낙원을 꿈꾸며 살아온 염 씨 영감

고구마 순 껍질 벗겨 팔던 허리 굽은 할머니

복사꽃 봄날 오면 손주랑 소풍 갈 날 기다린 희망도 다 보인다

 

그때는 이런 날도 있었다! 다 지나가버린 날들이지만 '나'를 찾아 추억 여행을 나설 때면 오랜 기억을 상기하기 위해 옛 앨범을 펼쳐보곤 한다!
그때는 이런 날도 있었다! 다 지나가버린 날들이지만 '나'를 찾아 추억 여행을 나설 때면 오랜 기억을 상기하기 위해 옛 앨범을 펼쳐보곤 한다!

가끔은 먼발치에서 돌아볼 일이다

길은, 다 지나온 길은 뒤돌아볼 때 더 잘 보이는 것을

 

키 작은 담장 너머 봉곳한 매화 꽃망울 

옹골찬 봄은 봄보다 더 봄날을 누렸는데, 

그렇게 소란소란 봄날 꽃동산이었는데,

이젠 다 흘러가 버린 것들, 

벌써 아청 하늘을 유랑하는 굴레방다리의 연가

이젠 구슬피 메아리치는 기별만 가슴에 파도친다

봄보다 먼저 와 봄을 살았던

옛 추억의 그림자만 서둘러 굴레방다리를 건너간다

그리운 옛 추억의 그림자만 노을 진다

인생은, 가끔은 먼발치에서 뒤돌아보며 살 일이다!

 

나의 파일들... 저 속에 내가 있는지 모른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인생은 뒤돌아보며 가끔씩 뒤돌아보며 살 일이다!
나의 파일들... 저 속에 내가 있는지 모른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인생은 뒤돌아보며 가끔씩 뒤돌아보며 살 일이다!

* 시작詩作 메모 :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 말처럼 뉴타운 개발로 옛 북아현동은 허망하게 다 사라지고, 눈에 가슴에 아스라이 그려지는 정든 골목길 정든 얼굴 정든 인정들만 희미하게 떠오른다.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선명히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한다. 늦은 가을 오후 동산에 오르면 지나간 여름의 그림자가 더 잘 보이듯이...

반평생 눈뜨면 만났던 눈에 익은 북아현동의 풍정들인데, 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덩치 작은 집들과 좁은 골목들과 목욕탕, 세탁소, 서점, 문구점, 영화루중국음식점, 박산후조리원, 공중전화박스, 우체통, 옥상에 천국 정원을 일궈 늘 자랑하며 눈인사했던 장 씨 할아버지... 이런저런 생활의 터전들, 인정들, 그리고 교정 주변의 풍경들,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익은 정든 얼굴들이 이제야 더 선명히 보인다.

 

먼발치에서 돌아보니 더 잘 보인다. 그리운 것들은 이렇듯 갈 수 없는 길에 신기루처럼 늘 나를 부른다, 늘 지나온 길 뒤돌아보게 만든다. 그립다, 그 길들이 그 얼굴들이 그 옛 그림자들이 그립다. 나의 생애의 길이요 강이었으니까, 마음으로는 볼 수 있으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 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것들을 그리며, 산산이 흩어져버린 이름을 부르며 굴레방다리 연가를 적어본다.

 

 

(20231104, 우수와 그리움이 사무치는 가을 창가에서 굴레방다리 연가를 적어본다,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