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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도랑물 졸졸 해맑은 아이처럼

by 솔물새꽃 202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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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도랑물 가로 즐비한 달개비꽃... 유년의 가을 뜨락은 수줍은 달개비꽃 지천에 무성하다!
가을 도랑물 가로 즐비한 달개비꽃... 유년의 가을 뜨락은 수줍은 달개비꽃 지천에 무성하다!

 

도랑물 졸졸 해맑은 어린아이를 닮아 가기를...

 
서울 온 지 40여 년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여전히,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깊은 우수와 외로움과 텅 빈 하늘에 안개처럼 자욱한 허허함에 잠긴다.
 
그 어디에도 안주할 데 없는
뜨내기 나그네 방랑자로 짚시 보헤미안 떠돌이로 이 거칠고 황무한 탁류의 강을, 죽음의 땅을 그 오랜동안 버텨온 것을 생각하면..., 내가 스스로 갸륵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억울해서 서러울 날도 많았던 까닭이다.
 
나는 한반도 금수강산을 퍽이나 사랑한다!
(내가 자연, 산과 강과 꽃과 바다에 각별한 관심이 있는 것은 나의 태생적 운명이려니와,  우리 나라처럼 천혜의 보고를 품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긍지와 신념 탓에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낯선 관찰자의 시선으로 한반도의 산과 강과 바다를 대하려 한다! 인간과 인간들과 그 인간들이 파헤치고 부수고 세우고 짓밟고 찢어 망쳐놓은 세상 눈에 보이는 것들은 빼놓고...!)
다 아는 것처럼 우리가 더불어 숨을 쉬며 한 生을 사는 이 지구별은 우주 은하행성 가운데
오직 물과 바람과 생명이 존재하는 ‘푸른 별’이라고 하지 않는가.
 

월출산에 봄이 피어날 즈음이면 얼레지꽃 향기가 가슴 울안을 기웃거리는 것을 느낀다!
월출산에 봄이 피어날 즈음이면 얼레지꽃 향기가 가슴 울안을 기웃거리는 것을 느낀다!

 
 
수도 '서울'에서 살아온 지 어언 40여 년이 훌쩍 흐르고 있다. 짧고 길고 귀한 내 인생의 여로에 40여 년은 너무너무 소중한 탓에, '서울'의 인생살이가 맘에 걸린 가시처럼 쑥쑥 아려올 때가 잦다.
 
기특하고 고귀한 나의 인생,
찬란하고 아름다워서 이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아야 할 나의 인생 40여 년을
이 '불모不毛'('불임不姙'의 시대, 불임의 땅이라는 표현을 나는 자주 쓴다)의 '서울' 땅에서 보내고 있다니,
생각하면 무엇하랴만 늘 원통하고 서럽고 분하고 박복한 나의 신세를 스스로 자탄해 보는 것이다.
 
단 한 번도 내가 살아온 이 시대와 흡족한 양보와 타협을 할 수 없어 쓸쓸하게 살아온 나...
나는 언제고 약간의 아웃사이더적인 성정이 있었던 탓일까...
내가 호흡하며 살아온 시대를 늘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문제적 자아로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머릿속이나 글 속에는 늘 초월, Beyond, 상승, 꿈, 새로운 것, 희망, 건너다, 변신, 부활, 극복 등, 현재의 '나'를 부정하여 더 새로운 '나'로 견인하고자 하는 노력과 갈망이 들끓었다.
이 심장이 더 심한 박동을 할 때면 나는 혼자 산을 걸었다.
별빛 초롱한 신새벽에서 다시 별빛 반짝이는 저녁까지...
그 길은 ‘서울’을 벗어나는 시간과 길이었고, ‘서울’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산을 찾는 까닭은 나의 초월이요, 나를 건지는 일이며,
나를 구원하는 영성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다.
 

우주적 큰 가슴을 품은 山... 無等의 山, 平等의 山, 차별이 없는 포용의 山... 아낌없이 주는 산의 사랑... 山은 사랑의 가장 구체적 형상이요 실체다!
우주적 큰 가슴을 품은 山... 無等의 山, 平等의 山, 차별이 없는 포용의 山... 아낌없이 주는 산의 사랑... 山은 사랑의 가장 구체적 형상이요 실체다!

 
‘서울’과 동시대의 거대한 시공간에서 지극히 미미하고 하찮은 사회적 존재로 버티면서
어떤 때는 개미처럼 하루살이처럼 악착같이 바둥거리며 아슬아슬하게 살아온 숱한 날들이
우여곡절처럼 지나갔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 세상 '서울'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타락한 어둠의 도시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탁류의 세상이라 일찍이 간파한 탓이다.
(나름 논리가 있으나 여기서는 장황해질 것 같아 그 근거를 생략한다)
 
그만큼 나는 '서울'을 표류하는 부표처럼 흔들리며 살아왔다.
시대와 시대의 가치와 모든 흐름과 산업화 이후 급변하는 문명사의 쏠림을, 급류처럼 흐르는 기계 문명, 인간사유, 삶의 방식, 인간 가치의 변화를 마땅하다 수긍하며 수용해 본 적이 없다. ‘서울’의 삶 40여 년은 늘 저항의 연속이었다. 징검다리 건너듯 신중한 의지적 결단의 나날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나의 ‘서울’이었다!
 

배척과 냉소와 차별과 독선을 묵인하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모든 말과 행위와 지향은 가식이요 위선의 껍데기일 뿐이다! '서울'이 나에게 아픔인 이유이다!
배척과 냉소와 차별과 독선을 묵인하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모든 말과 행위와 지향은 가식이요 위선의 껍데기일 뿐이다! '서울'이 나에게 아픔인 이유이다!

 
바다 위 작은 조각배처럼 흔들리며, 가식과 위선과 안일의 가면으로 위장을 일삼으며 살아온 40여 년의 세월이었으니 어딘들 마음 내려놓을 데 있었으랴. 어느 때고 한가히 한눈판 적 있었으랴.
 
그 어디 흔적도 찾을 수 없이 흘러 가버린 뜬구름의 길 같은 나의 인생 나의 길 나의 세월 나의 그림자...
 
계절의 흐름을 그 누가 거역하랴...
폭염의 긴 여름 장성長城이 가을, 秋水 秋風 秋聲의 희미한 기미가 보이자 무너지려 하고 있다.
내일모레면 큰 명절 추석이 방방곡곡 면면촌촌 보름달로 떠오를 것인데...
늘상 그랬듯이 맘이 대명절 턱 밑에서 싱둥생둥 흔들린다.
 
특히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마음 오갈데없는 고아가 되어버린 이후에 맞은 추석이나 설은 영 맘이 편치 않아 옛 추억을 더듬으면 고향 앞산 그리메의 옷소매가 눈물에 젖어 흥건해진다.
 
고향을 지키며 고향의 산하를 안전에 두고 고향의 품에 안겨 노을을 바라보는 벗들이 이맘때면 더욱 그리운 것을 어찌 금하랴...!
 

無爲 自然, 자연 무위... 절로 피어 세월의 문전에서 가을을 기다리는 가을 향기 물씬한 가을 풀꽃... 가을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저 생명의 숭고한 기억을 존중하고 싶다!
無爲 自然, 자연 무위... 절로 피어 세월의 문전에서 가을을 기다리는 가을 향기 물씬한 가을 풀꽃... 가을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저 생명의 숭고한 기억을 존중하고 싶다!

 
주작산
덕룡산
만덕산 서기산 한치재...
바라보는 석양 노을 긴 산그림자 어슬렁거리는
가을 들판이 눈에
어른거린다.
 
검푸른 정기포 너머 아랫강생이
대숲 지나는 해거름 해오라기의 그림자도 눈에 더욱 삼삼하다.
 

그리움은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핀 달맞이꽃인지 모른다... 늘 바다를 향해 출항했다 귀향하는 작은 고깃배의 허허로움이 아닐까!
그리움은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핀 달맞이꽃인지 모른다... 늘 바다를 향해 출항했다 귀향하는 작은 고깃배의 허허로움이 아닐까!

 
이번 추석은
우리 부부 아무것도 하지 말기로 했다.
 
세상은 단순하고 자연은 한결같은데 우리 인간들 마음이 문제다.
우리의 마음이 복잡하고 번거롭고 미련하여 늘 탈이다.
 
우리 두 부부이서 조용히 안식하자고 강력 권장했다.
 
돌아보니 올 한 해 여기까지 넘어오는 동안 넘 분주히 복잡하게 이일저일 감당하며 살아온 탓에 몸맘이 많이 지쳤다. 우리의 몸맘이 애원하듯 쉬어달라고 아늑한 쉼을 원하는 것 같았다.
 
자식들이 오면
반갑고 좋으나
손주랑 놀아주는 일이며 백년지객 대하듯 잔칫상 차리는
아내의 부엌일이 보통 난리 법석인 게 아니다.
설거지통 앞에 서 있는 가느다란 아내의 등 굽은 뒷모습이 너무 안쓰러운 것이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뒷정리하는 일이 갈수록 힘든 것은 경험자라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우주의 결 세월의 결 생각의 결 감정의 결 생명의 결 바다의 결 인생의 결 바람의 결 빛의 결 어둠의 결 너와 나의 결... 수많은 결이 존재하는 이 세계... 황홀하고 현요한 신비의 자연!
우주의 결 세월의 결 생각의 결 감정의 결 생명의 결 바다의 결 인생의 결 바람의 결 빛의 결 어둠의 결 너와 나의 결... 수많은 결이 존재하는 이 세계... 황홀愰惚하고 현요眩耀한 신비의 자연!

 
며느리가 밤샘 당직이라고... 어제부터 집에 와서 오랜만에 딸 내외와 손녀, 아들 손자, 아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둘러 앉아 중국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떼우고... 이렇게 앉아본 게 얼마 만인가...!
 
살아보니 사는 게 별것 아닌 데 갈수록 거대도시 '서울'의 인생살이는 고역이요,
'서울'의 귀한 인생들은 소모적인 부품으로 전락하고 만 것 같아 가슴이 쓰리다.
내 사랑하는 자식들의 인생까지 갉아 먹고 있으니...!
 
긴 밤을 집에서 보내고 아침을 먹고 교회 다녀와 점심 때까지...
함께 있으면 살갑고 좋으나 그들이 돌아간 후
집 안을 정리하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집 안을 정리하고 난 후 동네 오금동산을 조용히 두어 바퀴 걷고 나니
맘과 몸이 살아날 것 같다.
 

이 순결한 아가가 살아갈 세상은 천예天倪의 자연自然이 만발한 세상이기를 꿈에도 간절히 기도한다!
이 순결한 아가가 살아갈 세상은 천예天倪의 자연自然이 만발한 세상이기를 꿈에도 간절히 기도한다!

 
작년 이맘때 피었던 꽃무릇 새순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 눈에 띈다.
내 영혼의 하늘에 시혼의 향기를 울려 퍼지게 하였던 꽃무릇!
 
여린 꽃망울과 꽃대가 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참으로 놀랍다! 자연의 생명은 신비하고 그 오묘함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저 탄성만 절로 터진다.
 
저들은 어떻게 때를 알까...? 어떻게 때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수천 년 동안 9월 이맘때, 개화의 시기를 어떻게 잊지 않고 기억해왔단 말인가...!
자연의 놀라운 섭리를 도저히 알 수 없다. 생명의 비밀과 신비를 감탄하지 않을 자 누구리오.
 
분명 때의 흐름을 아는 꽃무릇(식물)은 생각과 감정과 영혼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임이 분
명하다.
(이를 인정하는 일이 이 땅, ‘서울’의 생태숲을 살리는 단초가 되리라)
이 지구별의 주인은 살아 존재하며 생명 숲을 이룬 모든 것들이다.
어찌 인간이 이 거룩한 생명 생태의 유기적 영토를 독단으로 다 차지할 수 있으랴...
인간 맘대로 유린할 수 있으랴...

꽃무릇의 여린 새 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9월 이맘때를 기다려 잊지 않고 찾아온 저 거룩한 생명의 기억력을 한없이 감탄하며 외경심을 품어본다!
꽃무릇의 여린 새 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9월 이맘때를 기다려 잊지 않고 찾아온 저 거룩한 생명의 기억력을 한없이 감탄하며 외경심을 품어본다!

 
자연 생물의 섭리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지만
늘 미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 미물인 나는
이 놀라운 식물(꽃무릇)의 생태 앞에 감탄과 황홀을 멈출 수 없다!
 
큰 자연 앞에서,
이 거대한 우주의 흐름 앞에서 인간은 낮아지고 낮아져야 할 일만 남았는데...,
세상과 사람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여전히 오만과 교만과 독선의 극치를 뽐내고 있다.
 
나의 추억
나의 우정
고향 산우회 옛벗들이시여!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지라도
참으로 귀하고 귀한 그대들 인생살이 잘 돌보소서.
 
이 땅의 찬란한 별님이시여!
지붕의 박꽃처럼 도랑물 고마니꽃처럼 피어나소서.
 
도랑물 졸졸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철부지로 순결하게 살아가소서...♡
 

9월 어디쯤 꽃무릇 만발한 불갑사든 선운사든 한 번 걸어보았으면...!
9월 어디쯤 꽃무릇 만발한 불갑사든 선운사든 한 번 걸어보았으면...!

 
20240916
오금동산에서 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