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 이 가을은 몇 번이나 더 찾아올까요...!
이 세상 논리 가운데는 정답이 없습니다. 확정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답이 없지요. 복잡다기한 삶, 천차만별의 사람들, 그 어디도 정답이 아예 없는 까닭은 모든 이들의 움벨트Umwelt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가 아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모든 일에서 기어이 정답을 찾겠다고 기를 쓰는 사람도 많구요.
그러니 독선과 아집과 배척의 서슬이 칼날처럼 번득이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상대방을 인정하려는 여유와 빈 틈은 사라지고, 타인과 사물에 대한 공감 능력은 떨어지며, 유아독존과 소아적 이기심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줄달음 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의 숲은 아름다운 공생공존의 조화로운 세계인데, 우리 인간의 숲은 진정한 숲의 생태적 질서가 무너지고 말았지요. 나무와 나무는 서로 어울려 상생하는데 사람의 숲은 포용이 없는 배척 미움 시기 질투만 난무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술(그림 클래식)이나 시나 소설 수필 동화가 좋은 점은 모든 것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우쳐 주는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예술이나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지요. 특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문해력과 글 해독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날로 독선과 아집만 무성하고, 그 결과 우리 나라는 중장년 노인 할 것 없이 문해력과 독해력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는 부끄러운 평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문해력이 저조하다는 것은 자기만의 눈으로(안목 관점 시점 판단) 사람이나 세상을, 책이나 자연이나 사물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문학이나 예술이나 자연을 가까이 하면 읽는 힘, 문해력과 잃어버린 순수성, 유연성, 상상력을 회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전문가의 주장입니다.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확장되고, 이웃에 대한 유대감과 긍정적인 창의력이 좋아지며 어린아이 같은 순결한 열린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능하면 미술관이나 영화관도 자주 방문하고 음악연주회도 가서 앉아 있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어 장이라 좋으니 매일 글을 읽는 일, 시나 소설이나 수필 등 타인의 긴 글을 읽어보며 생각 속에 침잠해 보는 일을 꼭 거르지 말고 해야 합니다. 이때라야 세속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조화와 아름다움을 향한 눈이 열립니다.
이 세상을 구원할 힘은 아름다움, 심미성審美性을 열망하는 지향이 이 세상에 만연할 때 꽃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긴 글을 읽어야 하지요. 글을 읽을 때는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자기 아집을 비우고 시인이나 작가의 글을 반복해서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가꾸는 일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꽃처럼 향기롭게 가꾸는 실천이지요. TV나 인터넷에 지나치게 한 눈 팔지 말고 남의 생각이나 주장의 굴레에 갇히지도 말며, 스스로 책을 읽고 시와 수필을 읽고 음악을 듣고 숲의 나무와 들풀과 새들과 함께 하여 메말라버린 자신의 영혼에 촉촉한 생기를 채워야 합니다.
곰곰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적은 내 안에 있는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태도인 것을 수긍합니다. 내 안에 가득한 탐욕 돈생각 미움 질투심 시기심이 가장 큰 문제이지요.
내 안에서 잃어버린 '나'의 순수한 자아를 살려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출발은 내 마음 내 생각 나의 태도 나의 언어 나의 말 나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잘 지키는 지혜와 길은 신앙이나 예술이나 문학이나 자연 속에 있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와 산과 예술과 신앙과 친숙해지는 시간 속에서 (정답이 없는 세상이지만..) 작은 해답의 실마리를 스스로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이들수록 자기만의 아름다운 향기와 빛깔을 가꿔야 합니다. 더 곱게 더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죽음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입니다. 항상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나의 삶을 위하는 것입니다. 삶이 죽음이요 죽음이 삶인 까닭에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죽음은 모든 것과의 관계 단절이지만, 삶은 유기적인 관계의 연결망인 숲의 일원으로 사는 것입니다. 곧 숲은 너와 나의 연결(균사체菌絲體)인 하나의 생명 덩어리이지요. 따라서 세상의 사람 숲이 너와 나를 살리고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나무들의 착한 생태환경과 한결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평생 자연과 숲과 신앙생활에서 인간의 마땅한 길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지리산이나 무등산이나 동네 작은 동산을 걷고 호흡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바른 길을 찾으려 골몰합니다.
새와 꽃과 소나무와 그리고 하늘과 강과 바다를 눈 뜨면 볼 수 있고, 맘만 먹으면 한걸음에 달려가 어울릴 수 있는 금수강산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큰 축복이요 감사할 일이지요.
또 우리는 생명이 있고 물이 있고 바람이 있는 푸른 지구별에서 한 생을 살다가는 가장 축복 받은 나그네 별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에서 책과 서점이 가장 많은 나라의 시민으로서 영혼의 양식을 맘껏 즐기며 맛볼 수 있는 문화태평의 행운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자랑인지요!
이 가을엔 풀벌레 우는 소리에도 마음을 기울여 보고 책의 오솔길도 산책하길 빕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헤어졌다 해후邂逅한 연인을 만난 듯이 이 가을을 맘껏 즐기다가 몌별袂別의 예감이 석양 노을처럼 찾아오면
슬며시 절로 사라지는 가을의 귀한 손님이 되어보길 빌고 빕니다!
우리 인생에 이 가을은 몇 번이나 더 찾아올까요...!
(추신 : 삶과 자연은 단순한데 인간이 복잡한 게 문제다!)
* 움벨트 :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세계에는 단 하나의 공간과 시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주체에 따라 수많은 공간과 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개개의 주체는 자기 나름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 고유한 환경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에 의해 동시에 동일하게 경험되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곱 폰 웩스쿨의 <이론 생물학> 중에서)
20240906
위례신도시에서 남한산성 오르는 숲길을 걷고 돌아와 몇 자 옮겨봤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소서...!
연세Well드림에서 솔물새꽃 三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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