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글을 쓸 때나 누구와 얘기를 할 때면 '등산登山, 산을 오르다,' 는 말을 잘 쓰지 않으려 한다.
자연 앞에서 무례하게도 인간의 정복욕과 오만함을 가벼이 드러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산을 걷는다, 산에 들다, 산을 들이다, 산문에 들다, 라는 표현을 주로 쓰려한다. 산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살아있는 생명을 간직한 큰 산의 존재로, 귀하게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나를 받쳐주고 나와 동행해주는 산의 마음이, 나에게 새 힘을 주는 산의 깊고 넓은 가슴이 온전히 전해오는 까닭이다.
적토성산積土成山, 한 톨 한 줌 흙이 모여 태산을 이룬 산의 시간! 긴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산은 대지 위의 가장 큰 생명체임이 분명하다. 산은 생명의 씨앗을 품고 지켜온 모성의 가슴이다. 산도 아파할 줄 알고 좋아할 줄 아는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둔감한 범부라도 쉽게 금방 느낄 수 있다.
가뭄이 길어 목이 타는 산, 비가 내린 다음 산의 표정을 보라, 산의 사분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라, 산이 살아있음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봄의 산의 소리와 가을과 겨울 산의 소리를 또 가만히 들어보아라, 천태와 만상의 얼굴과 눈빛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산, 산도 외로울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다. 분명 산은 영혼과 감정이 있는 거대한 생명체임을 수긍하고 남으리라, 산의 생명성과 산의 위의를 나는 신뢰한다. 억만겁 이 우주의 숨결을 간직한 산의 태연자약泰然自若한 위엄을 나는 공경한다.
요산요수樂山樂水!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인자仁者와 지자知者의 마음으로 나누어 공자 선생님은 얘기하였는데, 나는 이 구분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 아니겠는가, 어찌 산과 물이 하나가 아니리오, 어찌 지자와 인자의 그 맘을 나눌 수 있으랴, 그 두 마음이 자연의 길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리오, 자연의 마음을 닮기는 똑같은 것이다.
여전히 천불동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바로 지금 이곳이 나의 샹그릴라로구나,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인생 부귀영화가 인생의 행복일까,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물소리 우렁차게 흐르는 설악의 대동맥 긴 천불동계곡을 구불구불 따라 걸으면, 우리가 살아서 누려야 할 것들이 과연 무엇일까, 길을 걷는 내내 끊이지 않고 따르는 질문과 의문에 침잠하리라, 그리고 지금까지 안달복달 속을 태우며 추구해 온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 깊은 회의에도 잠길 것이리라, 그리고 곧 아주 간결하고 단순한 정답이 명징한 물빛 물소리를 통해 보이는 것을 설악동에 닿기 전에 선명하게 알게 될 것이리라,
길, 돌아보면 더 잘 보이는 길!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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