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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홍도, 홍도를 다시 그리다!

by 솔물새꽃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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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사는 섬, 한 점 물방울꽃이다!
홍도,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사는 섬, 한 점 물방울꽃이다!

'하의도荷衣島' - 김삼규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한 점으로 보일 때 있다고 했던가,
그러므로 오늘,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소망이 아니므로*
 
나이를 먹는 일이 무슨 대수랴만
풍랑 없는 인생길이 또 어디 있으랴만
살아야 할 길이 살아온 세월만큼 아득히 깊어가는 것을 느낄 때
도저히 알 수 없는 생애의 수심이 답답해 무작정 뱃전으로 나선 길
가물가물 수련 두어 송이 마냥 눈 시리다 했던가,
무너지기 위해 출렁이는 바다처럼
부서지기 위해 일어서는 파도처럼
지난 몇 해 전 가거도 가는 먼 수평선 너머*
눈에 보이는 거품 같은 것들 부초 같은 것들 바다에 다 버리고
어느 섬 기슭 섬초롱꽃으로 살고 싶다고 했던가,
바다 한가운데 어디도 머물 데 없는 지친 바람의 길처럼
노을 지는 밤을 만난 유목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한 점으로 보일 때 있다고 했던가,
그러므로 오늘,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소망이 아니므로
 
슬픔은 언제나 기쁨으로 피어나는 꽃망울일 거야
그리움은 서러워도 서럽지 않은 기다리는 순정일 거야
아직도 간간한 소금밭 걷고 있는 촉기 탱탱한 사람아,
아청鴉靑의 바닷속 산호의 꿈을 품은 사람아,
그대의 긴 풍랑의 길은 어디서 오는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파도의 몸부림처럼
하의도의 기다림은 어디서 오는 갈망인가,
 
*히브리서 4장 :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로마서 8장 :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가거도 : 한반도 최서남단에 위치한 섬, 행정구역으로는 신안군 흑산면에 속함
 

하의도의 기다림은 어디서 오는 갈망인가, 내 안의 섬 하의도!
하의도의 기다림은 어디서 오는 갈망인가, 내 안의 섬 하의도!

'어제'의 강을 건너와 '오늘'의 새 길을 다시 나선다,

오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오늘, 나의 오늘이 더 아름다운 길이기를 기도하며,

앨버트로스 새의 길을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모험의 새 길을 오늘도 간다,
 
한 마리 새와 다를 바 없는 유목인의 가슴으로, 눈빛으로, 비상을 웅비를 초월을 상승을 변화를 부활을 열망하는 나의 바람이 바로 나의 오늘이요, 나의 하루요, 한 존재의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박동인 까닭이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소망이 아니므로 믿음의 눈을 크게 열어 먼 구원의 길을 바라본다,

 
오래전 허허한 가슴에 간간한 갯바람이 그리워 뱃길에 몸을 맡긴다. 늘 파도처럼 들썩이는 마음의 동요와 갈망이 지향하는 대로 마음 바다에 흔들리는 돛단배처럼... 흑산도를 한 바퀴 돌고 홍도에 정박하니 짙은 해무에 전신은 표류하는 해초 마냥 후줄근하지만 마음만은 간간한 영혼의 촉기 팽배하다.

 

홍도, 홍도는 아청의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산다, 홍도는 검푸른 먹물로 가슴의 노래를 밤새 풀어낸다!
홍도, 홍도는 아청의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산다, 홍도는 검푸른 먹물로 가슴의 노래를 밤새 풀어낸다!

나의 시 '홍도'의 산실, 내 영혼의 바다엔 늘 홍도가 떠 있다! 홍도의 하얀 공소성당에서 긴 기도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오니 새의 둥지처럼 작은 방은 따스한 온기 감돈다. 한 여름인데도 홍도의 밤은 초가을 해풍처럼 쓸쓸하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안개비와 비바람과 비바람에 흥건히 젖은 적막뿐이다, 칠흑의 장막 속에 움츠린 작은 섬 홍도, 홍도의 밤, 도저히 아침이 올 성싶지 않은 홍도의 밤!

 
홍도에 와보지 않으면 홍도를 알 수 없다, 홍도의 가슴은 울어도 울어도 마르지 않는 검푸른 눈물의 샘이다, 홍도의 눈과 얼굴과 가슴과 발등은 항상 눈물이 젖어 흥건하다, 그리할지라도, 그리할지라도, 빗방울인지 해무인지 물안개인지 눈물인지 모를 검푸른 홍도의 꿈은 지칠 줄  모르는 시지프스의 눈빛이다, 사방은 검게 탄 가슴의 갈망들이 바다처럼 들썩인다, 머물 데 없이 떠도는 바람의 혼일까, 깃대봉 가는 기슭 그리움에 젖은 며느리밥풀꽃의 이슬 젖은 눈망울, 낮에도 반짝이는 노란 원추리꽃의 그윽한 시선, 마치 어린왕자의 별빛처럼 쓸쓸하다, 끝없는 고난의 풍랑만이 목마른 유목인의 길이라고, 좁은 문 좁은 길이라고, 깜빡이며 비춰주는 꺼질 줄 모르는 등대, 등대! 마치 잠들지 않은 홍도의 영혼이 반짝이는 불빛처럼, 스러져 소멸하는 길만이 새로이 거듭나는 새 길 새날임을 보여주는 야로冶爐의 불길, 운명애, 홍도는 홍도의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 홍도의 노을! 노을의 섬 홍도! 

 

홍도의 원추리! 섬에 내린 하늘의 별 같았다...
홍도의 원추리! 섬에 내린 하늘의 별 같았다...

 

홍도 깃대봉 오르는 길에 만난 슬픈 꽃, 홍도 꽃며느리밥풀꽃!
홍도 깃대봉 오르는 길에 만난 슬픈 꽃, 홍도 꽃며느리밥풀꽃!


하염없이 어느 때나 내 영혼이 부르며 바라보다 숨차게 달려가 머물다 돌아오는 내 안의 섬! 내 안의 검붉은 갈앙, 내 안의 아청빛 홍도, 노을 타오르는 광염의 홍도! 홍도의 밤을 품으니 내 안이 출렁이는 바다요, 홍도는 나의 바다에 뜬 작은 부초浮草의 섬이다. 외로운 행성이다, 가녀린 별이다. 내가 홍도에 안긴 것인지 홍도가 내 안에 깃든 것인지, 현요하다 할까, 황홀하다 할까, 무념무상無念無想, 물심일여物心一如, 주객일체主客一體, 무장무애無障無礙,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경계 없는 마을이 내 안에서 펼쳐짐을 느낀다, 이런 상념의 파돗소리 밀려온다, 
 

현요하다 할까, 황홀하다 할까,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무하유지향의 경계 없는 마을이 내 안에서 펼쳐짐을 느낀다.
현요하다 할까, 황홀하다 할까,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무하유지향의 경계 없는 마을이 내 안에서 펼쳐짐을 느낀다.

아직도 가야 할 내일의 여정을 망설이며 잠을 재촉하지만 칠흑의 밤바다가 울먹이는 소리와 비바람과 숨옷처럼 젖은 해무의 밤은 무겁게 나를 짓누른다. 문풍지를 흔드는 바다의 애원을 섬의 고독을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다. 홍도는 눈을 뜨고 보채는데 어떻게 뿌리치고 모른 채 눈감을 수 있으랴, 거의 뜬눈으로 새날을 맞이하니 가거도 가는 배편이 날 기다린다, 다시 가거도 가는 뱃길에 표랑하는 떠돌이가 된 것이다.

 

목포를 출발하여 가거도까지 여객선이 닿는 곳마다 갯바람에 검게 그을린 순후한 얼굴들, 반짝이는 눈빛들이 갈매기의 시선을 많이도 닮았다.

 

먼바다의 숨결을 감촉하는 저들의 오감은 얼마나 깊고 깊은 데까지 닿을 수 있을까, 길을 찾아 수많은 안개와 비바람처럼 길을 찾아 날아오르는 갈매기의 눈빛과 바다를 마당 삼아 살아온 섬사람의 눈빛은 아주 닮았다. 길이 없는 아청의 검푸른 바다에서 눈뜨면 새날 새 길을 찾아 살아온 유목의 생애, 갈매기와 섬사람이 돌아갈 길은 어디란 말인가,
 
비바람 치면 쉬어가고 바다가 잔잔하면 길을 나서고, 바람 따라 물 따라 하늘 따라 흐르는 바다 위에서 살아온 초연한 저들의 길, 바다의 길이 사람의 길이요 사람의 길이 갈매기의 길일까, 자연의 흐름을 이기려 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비바람 치면 비바람 치는 대로 순종하고, 태풍이 가고 파도가 잔잔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바다의 깊은 마음을 잠잠히 읽으며 살아온 조화로운 생애, 해 뜨는 노을의 품에서 일어나 해 지는 노을의 품에 깃들 때까지 바다에 뜬 작은 별, 홍도에서 섬처럼 갈매기처럼 파도처럼 수많은 포말의 눈망울처럼 반짝이며 살아온 고독한 생애의 길, 저들의 숙명의 길이 보인다. 보이지 않던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홍도는 검푸른 아청의 행성이다, 멀리 깃대봉 기슭에 노란 원추리와 눈물에 젖은 며느리밥풀꽃은 잘 있을까!
홍도는 검푸른 아청의 행성이다, 멀리 깃대봉 기슭에 노란 원추리와 눈물에 젖은 며느리밥풀꽃은 잘 있을까!

하의도와 흑산도를 지나 홍도와 가거도 가는 뱃길에 아주 분명히 보인다. 갈매기나 파도나 바람이나 얼굴 검게 탄 섬사람이나 멀쑥하고 묽은 외로운 도회의 인간이나 파도에 멍든 검푸른 가거도나 홍도나 하의도나 한결같이 한 길 한 점 한 섬인 것이 보인다. 바라보고 바라보며 서로를 애타게 부르는 눈물의 섬인 것이 보인다.
 

홍도, 홍도는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사는 섬이라고 속삭인다!
홍도, 홍도는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사는 섬이라고 속삭인다!

 

홍도 - 김삼규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사는

 
홀로 사는 
붉은
반점斑點
 
사람은 누구나
홀로 피는 

 
홀로 피었다 지는
붉은
꽃잎
 
*김삼규의 '내 안에는 섬이 하나 있다'에서 인용함
 

해 뜨는 노을의 품에서 일어나 해 지는 노을의 품에 깃들 때까지 바다에 뜬 작은 별, 홍도!
해 뜨는 노을의 품에서 일어나 해 지는 노을의 품에 깃들 때까지 바다에 뜬 작은 별, 홍도!
이 반도의 땅은 어디나 산이 있다, 대지에도 바다에도, 홍도의 영봉 깃대봉!
이 반도의 땅은 어디나 산이 있다, 대지에도 바다에도, 홍도의 영봉 깃대봉!

 

20230519,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