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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불암산, 그늘 아래 느럭느럭 봄은 가고, 봄은 또 오고,

by 솔물새꽃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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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가 피어 날리고 있다, 송화가루 날리는 오월이 바람에 날리는 산 언덕 세상의 언덕으로 우리 함께 모이자!
송화가 피어 날리고 있다, 송화가루 날리는 오월이 바람에 날리는 산 언덕 세상의 언덕으로 우리 함께 모이자!

산사의 그늘 아래 느럭느럭 봄은 가고, 봄은 또 오고

산사의 연등 아래 아득한 발원의 불심 연화의 향기로 꽃 피어나길 빌며 앉아본다. 기도하는 아낙의 묵주 굴리는 눈빛 입술의 여음... 기도하는 마음처럼 아름다운 꽃이 어디 또 있으랴! 누구를 향한 사무친 동경이든...

 

사진으로 보는 꽃이 더 아름답다.’ 는 지인의 문자가 울린다. 종달새 울음 우는 소리 불암산 바윗 자락 맴돌아 물결을 이루는 정오 무렵, 햇살이 드리운 산 그늘 아래 느럭느럭 길 떠나는 봄을 배웅하며 지긋이 봄의 마음을 듣는다, 봄의 서러움을 읽는다.

 

사람의 눈보다 더 멀리 보고 깊이 보는 것은 없으리라. 아무리 망원경이나 현미경이 발달해도 인간의 눈보다 더 많은 세계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스마트폰의 사진 기술이 최첨단 화소와 기능을 가졌을지라도 인간의 눈으로 본 세계보다는 더 아름답게 세계와 사물을 담아낼 수 없으리라, 나는 믿는다. 인간의 마음은 우주다. 마음의 무궁무진한 시공의 광막함을 어찌 다 측량할 수 있으랴. 마음의 높이와 깊이와 드넓은 지평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마음 눈으로 본 세계를 어찌 감히 AI가 따를 수 있단 말인가. 처음서부터 불가능한 일이요 끝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꽃에게 다가가 지긋하게 느긋이 꽃의 소리 꽃의 말 꽃의 눈빛을 읽어보라! 꽃이 보일 때까지, 내 안에 꽃이 꽃 속에 내가 있음을 안다!
꽃에게 다가가 지긋하게 느긋이 꽃의 소리 꽃의 말 꽃의 눈빛을 읽어보라! 꽃이 보일 때까지, 내 안에 꽃이 꽃 속에 내가 있음을 안다!

인간과 기술(기계, 과학)의 근본적 차이이다. (여기서 더 깊은 데까지 천착할 일은 아니지만) 혹여, 우리의 마음속에 인간보다 인공지능의 기술을 더 믿고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면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기술이 아름다우려면, 인간이 만든 기술이 결국 아름다우려면 과학기술을 만든 인간의 마음, 인간의 지향이 아름답고 광대하고 정의롭고 평등해야 한다. 인간을 이롭게 하는 아름다운 기술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 기술은 아름다운 미학으로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인공지능을 가진 AI가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아니 자주, 수시로... 과학과 기술과 이성과 돈과 경쟁과 소유적 삶과 이성적 사유의 영역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곤고한 경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존재론적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감성적, 철학적, 심미적, 문학적, 서정적, 풍류적 사유와 인식의 여백이 내 안에서 생겨날 수 있도록 우리의 영혼에 쉼과 여유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의 울림, 꽃과 새들과 소나무와 물의 향취를 들일 수 있는 여백을 마음 안에 마련해 두고 살아야 한다. 시와 에세이와 명화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한글로 씌어진 영혼의 노래를 들으며 나비처럼 꽃의 바다를 출렁거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봄이요 자연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기만 했다, 내가 본 것이 다인 줄 알았다, 큰 실수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아야 불암산이 보인다!
멀리서 보기만 했다, 내가 본 것이 다인 줄 알았다, 큰 실수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아야 불암산이 보인다!

문제는 우리의 지긋한 기다림이다. 느긋이 참고 기다리며 바라보는 일이다. 삶이라는 거대한 숲에 수많은 길이 또 있음을 아는 일이 급선무다. 오직 한 길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만 고집할 일이 결코 아니다.

내가 가는 길만이 옳은 인생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좁은 우물 안 개구리의 시선을 저 먼 북해 바다로 돌려야 한다. 이런 울림과 반향이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날 때까지 흙냄새 물냄새 갯냄새 물씬한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먼 지평선을 오가는 바람의 말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이다.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의 길을 떠나 혼자만의 시공에 머물러 보는 일, 그 깊고 아늑한 산의 품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관심이 가는 사람이나 꽃이나 나무나 새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나의 남은 길을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새로이 가늠해 보는 일이다. 

 

봄은 서서히 가려 하고 있다. 봄은 가기 위해 오는 것인가, 잿빛 산과 들에 수많은 꽃을 밀어 올린 봄의 힘, 땅속에서 나무의 품에서 씨앗의 어둠에서 피어난 봄의 꽃들, 빛의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 올랐다. 벌써 무성한 여름으로 장성하였다. 이렇듯 봄이 오면 온 대지는 꽃으로 웃는다. 꽃으로 봄은 오고 꽃을 바라보며 누리며 즐기며 우리는 봄을 산다. 슬그머니 시나브로 대지의 온갖 생명을 깨우고 호명하며 천자만홍千紫萬紅 수많은 꽃의 열굴로 돌아온 봄의 영토를 보라! 우리는 무엇 때문에 가난한가, 우리는 무엇으로 더 서러운가, 아득한 봄 하늘을 보며 멀리 초록의 바다로 달려갈 일이다. 우리를 기다리며 부르는 풍성한 자연의 가슴에 봄의 품에 더 깊이 안겨볼 일이다.

 

산은 인자하고 자비하여 언제고 우리에게 스승이다. 묵연의 가르침으로 감동을 선물한다.
산은 인자하고 자비하여 언제고 우리에게 스승이다. 묵연의 가르침으로 감동을 선물한다.

봄은 꽃으로 웃는다.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 봄이라면 우리의 마음도 봄이다. 꽃으로 피어나는 우리의 마음, 그 마음속 얼굴들 이름들 기다림들 꿈들 소망들 그리움들...

우리의 마음에 피고 지는 꽃들을 보라! 우리의 마음은 온갖 꽃 만발한 봄 동산일 것임에 틀림없다. 이리 보면 이 세상은 봄이 아닌 것이 어느 것 하나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다 봄이다. 자연의 품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고 뛰어노는 모든 것들은 봄의 목숨이다. 긴 기다림 속에서 때를 알고 피어나는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봄, 봄의 소리 봄의 빛깔 봄의 미소 술렁이는 봄의 물살, 수많은 형상으로 봄을 사는 봄의 꽃들, 꽃들의 세상이 봄이다. 대지는, 우리의 마음은 봄으로 웃고 꽃으로 살아야 하는 하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꽃으로 피어나는 것만이 꽃이 아니다. 마각의 두터운 흙을 밀어 올리며 발돋움하는 여린 풀잎을 보라,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나뭇가지의 연두색 보드라운 새 움을 보라, 자고나면 파릇하게 대지를 덮어가는 푸른 들풀을 보라, 운동장을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의 함성을 들어보라, 황토밭에 뿌리를 서려두고 긴 겨울을 이겨낸 남녘 인동忍冬 작물인 마늘 보리 파 장다리 생강 봄동을 보라, 다시, 우리의 마음에 피어나는 사랑을 보라, 우리의 마음속에 자고 나면 피어나는 기다림을 한번 생각해 보라.

 

꽃의 미소 꽃의 눈빛 꽃의 마음이 우주다!
꽃의 미소 꽃의 눈빛 꽃의 마음이 우주다!

어느 것 하나 봄의 꽃이 아니고 무엇이랴, 꽃이 핀다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니듯 대지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봄을 이루는 꽃들이다. 우리의 가슴가슴마다 피어나는 꿈이 있다면 우리는 봄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판이 봄이라야 진정 봄은 완성되고 만다. 봄으로 봄을 사는 꽃인 것이다. 나이를 탓하랴, 아니 계절을 핑계 삼으랴, 꿈나무로 꿈의 꽃으로 꽃망울 품고 기다리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진정 봄이다, 봄을 기다리는 것이요, 피어날 봄을 다시 살고 있는 것이리라.

 

봄과 오월과 산을 품고 사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봄과 오월과 산을 품고 사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20230512,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