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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쓰기

편지, 첫눈이 오고 찔레꽃 피면 너에게 편지를 쓴다!

by 솔물새꽃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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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일 속에는 아직도 보내지 못한 편지의 사연들과 내게 날아온 편지의 오래된 사연들이 나의 존재와 행복을 지금도 지켜주고 있다!
이 파일 속에는 아직도 보내지 못한 편지의 사연들과 내게 날아온 편지의 오래된 사연들이 나의 존재와 행복을 지금도 지켜주고 있다!

편지, 첫눈이 오고 찔레꽃 피면 너에게 편지를 쓴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 시인의 '행복'을 읽으면 까마득한 청보리 봄바다가 파도처럼 나의 가슴에 연신 부서진다. 나의 길, 편지를 생각하면 우수 어린 추억이 해일처럼 걷잡을 수 없이 일렁이는 까닭이다. 분명 편지는 누구를 그리는 마음으로 쓰는 일이다. 아직도 눈이 오나 꽃이 피나 너를, 너를, 기다리 듯 나는 편지를 쓰며 그 이름을 길게 불러본다. 아직도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너와 나의 순결했던 봄날의 먼 하늘을 꿈꾼다.

 

(세태가 급변하여 지금은 이메일로, 다시 카톡이나 문자나 SNS로 영상 유튜브로 다양하게 연락 매체가 변하고 있지만, 연필로 쓴 편지보다 더 애틋하고 절실한 소통의 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편지를 많이 써본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ㅡ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의 '행복幸福' 전문 인용
 
청보리 초록바다 멀리 한 점 섬을 그리워하는 일,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오늘 하루도 여전히 너를 기다리며...!
청보리 초록바다 멀리 한 점 섬을 그리워하는 일,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오늘 하루도 여전히 너를 기다리며...!

 

통신수단이라고는 오직 전보나 편지 밖에 없었던 시절, 나는 부모님을 떠나 어린 동생들과 자취하며 대처에 있는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리고 군복무 기간이 33 개월이던 시절에 군대 갔었으니 꽤나 많은 편지를 썼을 것이다. 편지로 숱한 사연을 전하고 반가운 기별을 기다리며 그 시절 생애의 징검다리를 건너왔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시절! 군에서 하루 일과가 끝날 때면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마음의 갈증을 달래며 다시 답장을 썼다. 학교에서 돌아와 편지통에서 편지를 꺼내 이름을 확인하고 편지를 열어볼 때면 늘 마음에 환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아마 잘 모르긴 몰라도 그 시절 나는 무척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편지는 이렇게 진화를 해야만 했다!
나의 편지는 이렇게 진화를 해야만 했다!

 

그 시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오직 편지뿐이었으니까, 얼마나 막막한 거리였던가, 얼마나 간절한 그리움으로 기다리며 살아야 했던가,  감성의 결이 섬세하고 늘 눅눅하게 젖은 나에게 편지를 쓰는 일과 고서점이 많은 계림동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일은 유일한 기다림이요 큰 보람이었다.

고향 부모님께로 옛 은사님께로 보고 싶은 친구에게로 누나와 동생들에게로, 그리운 사연과 애틋한 마음과 눈물을 담아 밤새워 꼭꼭 눌러쓴 두툼한 편지! 편지에 꼭꼭 눌러 담은 마음의 편린들, 젖은 가슴의 말들... 편지를 다 쓰고, 편지 겉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적고, 편지지를 가지런히 접어 넣어 봉투를 봉합하고 나면 얼마나 마음은 기뻤는지 모른다, 나의 편지를 받아 읽을 부모님과 시골 중학교에 계신 선생님의 얼굴을 미리 그려보는 설렘과 기쁨, 편지는 나를 위하는 마음보다는 나의 편지를 읽어볼 누군가를 더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물빛 마음을 흘러보내는 일인 것이다. (그 시절, 항상 나의 책상 서랍에는 편지 봉투와 편지지와 우표가 넉넉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른 해서체 글씨로 주소를 쓴 나의 편지 봉투는 항상 무게를 초과하기가 일쑤였다. (편지에 담아 보낼 사연이 많아 매번 여러 장에 담았을 테니...) 우표를 붙여 학교 가는 등굣길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학교로 향하는 길은 늘 즐거웠다. 편지를 쓰느라 학교 공부는 조금 모자랐겠으나 편지를 쓰는 내내 얼마나 마음은 맑아지고 순편했던가.

 

 

어느 봄날 섬진강을 따라 거닐면서 나는 이런 편지를 나에게 독백하듯이 남겼다!
어느 봄날 섬진강을 따라 거닐면서 나는 이런 편지를 나에게 독백하듯이 남겼다!

 

우정과 사랑이 꽃 피어나는 풋풋한 봄날의 환희가 넘치는 편지 글도 많았다. 아마 근원을 알 수 없는 고독과 연민과 그리움이 늘 편지의 저류를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고향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쓸 때면 억척스럽게 일만 하실 두 분의 검게 그을린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밤새 울다가 끝내 편지를 다 쓰지 못한 적도 많았다. 멀리 대처에 자식을 떼어 보내놓고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 얼마나 어린 새끼들이 보고 싶으셨을까, 자식들 교육을 위해 살과 뼈가 다 닳도록 고생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회고해 보면 그분들은 자식들에게 단 한 번도 큰 소리로 화를 낸 적이 없으셨다. 공부해라, 공부 좀 잘해라, 다그친 적도 단 한 번도 없으셨다. 공부를 못 해도 좋아하셨고, 늘 오지다고 늘 든든하다고 늘 기쁘다고 입술에 자랑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당신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다 희생하신 우렁이의 사랑!

 

신새벽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왕버드나무 그늘아래 샘터에서 맑은 샘물 떠놓으시고 기도하셨던 울 엄마 아부지, 나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이나 일요이면 고향 부모님께 눈물 젖은 편지를 써 당신들을 위로해드렸고 보고싶은 나의 마음을 달랬다. 나와 동생들은 부모님의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아니었으랴... 편지가 단 하루라도 빨리 부모님께 배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요이면 자췻집에서 먼 거리에 있는 시내 우체국까지 달려가 큰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돌아올 때도 잦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고서점과 중고서점이 즐비한 계림동 골목길에 들러 이 책 저책 오래된 고전의 냄새를 맡고 돌아오는 즐거움도 있었던 까닭이다.

 

그 시절 편지를 썼던 문화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편지를 통해 만들어진 나의 습관과 기억이 매일 글을 쓰는 길로 나를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 시절 편지를 썼던 문화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편지를 통해 만들어진 나의 습관과 기억이 매일 글을 쓰는 길로 나를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 후 33개 월 군 복무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던가, 훈련소에서, 자대가 있는 섬에서, 밤이나 낮이나 시간만 나면 편지를 쓰고 일기를 썼다. 대학 국문과에 다니다 온 사람으로 소문이 나서( 군 인사기록부에 학력이 명기되어 있기 때문) 훈련소에서는 중대장의 편지나 전우의 편지를 대필해 준 적도 많았다. 당시 논산 훈련소 중대장은 대구에 있는 어느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든 편지를 잘 써서 그 여인을 애인으로 삼고 싶었던 것이다. 훈련이 없는 어느 주말 중대장은 나를 호출하였다. 훈련소 훈련병의 빳빳한 긴장과 힘든 훈련에서 잠시 빠져나와, 나는 중대장의 연애편지를 쓰며 중대장의 마음으로 돌아가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 후 내가 쓴 편지가 어떻게 일을 잘되게 하였는지, 그 여인이 중대장 면회를 와 훈련병 신분으로 기간병의 군복을 빌려 입고, 논산 훈련소 밖 연무대 읍내로 중대장을 따라가 그 여인을 만난 자리에 합석하여, 군에서 하는 말로 사제 음식을 먹고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기막힌 특권(?)을 누린 적도 있었다.

 

이제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날렵한 제비의 문양이 그려진 큰 가방을 멘 체부 아저씨와 붉은 편지통과 대문 앞 우체통과 손바닥 만한  편지! 애틋한 우수와 설렘과 기다림과 그리움이 흐르는 편지가 오갔던 시절! 편지를 보내고 편지를 기다리며 살았던 시절! 그러나 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것들, 편지도 엽서도 펜팔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심지어 이메일로 주고 받았던 인터넷 편지글도 점점 쇠락의 길로 급속하게 멀어져 가고 있으니... 문명의 흐름은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일순간에 빼앗아버리는 것 같아 늘 상실감만 텅 빈 마당처럼 휑하게 가슴에 남는다.

 

아무리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 인지공학 등 최첨단 문물이나 기술이 등장하여 세상을 뒤흔들고 유혹하여도 그 시절 편지나 펜팔 만한 별 재미나 흥을 부추기지 못한다. 나의 영혼과 그리움을 키워온 시절은 어디 오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지 오래인데, 나만 광야를 떠도는 유목인처럼 배회하고 있으니...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감성과 여흥과 눈물을 맑히고 깊게 하는 것들이 오래오래 살아서 남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편지는 이젠 섬과 산과 물과 꽃과 새들에게로 향한다, 강과 바다와 하늘이 나의 편지를 기다리는 그리운 '너'이다!
나의 편지는 이젠 섬과 산과 물과 꽃과 새들에게로 향한다, 강과 바다와 하늘이 나의 편지를 기다리는 그리운 '너'이다!

청마의 이 시를 읽으면 우체부 아저씨도 그립고,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 줄 편지를 기다리던 시절도 그립다. 정녕 편지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쓸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 그때는 우표 수집이 취미로 유행하기도 했었다. 물푸레나무가 그려진 10전짜리 우표는 얼마나 예뻤을까, 갑자기 그리움과 꿈으로 채워진 편지를 쓰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못 해 떨리는 손으로 쓴 편지를 몇 번이고 찢다가 끝내 연탄불에 태워버렸던 풋풋한 청춘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우리의 추억과 감성을 일깨우는 서정적 긴장이 느껴지는 낭만적 풍미 그윽한 삶, 비오는 봄날이나 저녁노을 타는 가을이면 나의 가슴에 봄으로 피어나는 사람, 노을처럼 곱게 타오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자! 편지를 쓰는 순결한 가슴을 회복해 보자! 아무리 바빠도 가끔 편지를 쓰며 한 계절을 건너는 쉼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마음에 그리운 얼굴들 떠올리면서 눈물로 젖은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그 마음이 아늑하고 고우랴.

첫눈이 오고 노란 봄꽃이 필 때마다 밤새워 썼던 편지의 사연들이 메말라가는 가슴에 단비처럼 그립고 간절히 그립다. 나는 지금도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아주 오래 전서부터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그리운 이여, 여전히 안녕하길...!

 

20240219, 솔물새꽃(김삼규)의 사소한 일상의 행복 찾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