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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리산智異山 천왕봉 가을 까마귀를 무척 사랑한다.
내가 해마다 시월 상달을 기다려 지리산 산문을 찾는 것도 이런 속맘 때문이다.
지리산 산정山頂 천왕봉 天王峰 (1915) 하늘을 선회하는 검은 갈까마귀의 그림자와
번득거리는 두 눈빛과 텅 빈 허공을 호령하는 깊은 울음소리에는
늘 서러운 울림의 여운 잔잔히 흐르는 까닭이다.
하늘과 땅 사이를 초연히 날아오르는
가을 까마귀의 비상은 볼수록 나의 심중에 물결을 일으킨다.
(나를 알아보고 무척 반기는 것은 아닐까, 믿고 싶은 마음도 일어난다.)
천왕봉에 앉아 등에 한기가 스밀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로 앞 바위 정수리까지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와 눈을 맞출 때도 있다.
어느 날 이 세상과 작별할 때가 나에게도 오면
나는 나의 시간 앞에 과연 담담할 수 있을까...
청정한 하늘처럼 겸손해질 수 있을까...
덧없는 수유須臾 의 생生 을 기쁨과 은혜와 눈물로 감사할 수 있을까...
천왕봉 가는 길 고사목 형해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남기고 구원의 하늘로 돌아갈 것인가!"
죽어 이 세상 산자들의 땅에서 사라지고 나면
누군가는 나를 기억할까,
누군가는 나를 추억할까,
그 누군가는 나를 그리워할까,
그 누군가는 나의 이름을 부를 때도 있을까,
이젠 차갑게 산정山頂 바위 끝 한 마리 까마귀로 서 있어 보아야 하리라!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아픔을 가을물에 헹궈낼 일이다!
20231026, 별빛도 달빛도 물소리도 차갑고 호젓한 가을밤.. 백무동 옛 고을 숙소에서 솔물새꽃(김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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